2018년 1월 27일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일본 싱글몰트 위스키 '야마자키 50년'이 3250만엔(약 3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최고가 위스키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가격. 1925년 일본에서 최초의 위스키를 증류한 후 100년도 안 돼 얻은 성과였다. 이를 가능케 한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가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政孝·1894~1979), 2015년 일본 NHK 방송에서 '한국의 맛상(다케쓰루의 애칭)'으로 소개한 사람이 김창수(34) 위스키증류소·CS바 대표다.
국내 위스키 전도사로 불리는 김 대표가 최근 다케쓰루의 자서전인 '위스키와 나'를 번역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다른 시대를 살지만, 위스키 때문에 평행이론의 삶을 사는 두 사람.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CS바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다케쓰루는 사케 양조장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책에 "아버지를 통해 술 빚는 사람의 태도를 익혔다. 아버지는 '술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김 대표는 학창 시절 우연히 접한 청주에 '명인 김창수'라 적힌 게 신기해 술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대학 때 전공은 중국어였지만, 가장 많이 한 건 술 공부였어요. 친구들과 전통주부터 수입 술까지 다 맛보다 피트향(병원향) 나는 위스키에 푹 빠졌죠. 휴대전화 부품 만드는 기업에 취직했지만, 6개월 만에 나와 위스키 바에 취직했어요."
다케쓰루는 1918년 위스키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아내 리타도 만났다. 그는 "일본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은 리타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썼다. 김 대표도 29세에 모은 돈 1000만원을 갖고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다케쓰루의 삶을 좇아서다. 스코틀랜드에서 6개월 동안 자전거로 이동하고 텐트에서 자며 증류소 102개를 돌았다. 마지막 날, 그에게도 은인이 찾아왔다. "글래스고에 있는 바에서 혼자 온 동양인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지치부 위스키 직원이었어요. 현재 '벤처 위스키'로 불리는 없어서 못 파는 술이에요. 그 친구 덕분에 지치부에서 제조 연수를 받고, NHK 방송에도 나가게 됐죠."
귀국한 다케쓰루는 1923년 오사카 야마자키에 일본 최초 위스키 증류소를 세운다. 12년 뒤엔 홋카이도에 요이치 증류소를 세우고 '닛카 위스키'를 생산했다. 김 대표도 귀국 후 위스키 수입사, 면세점, 위스키 바를 돌다 올해 초 김포에 증류소를 세웠다. 그는 "현재 운영 중인 CS바는 다음 달까지만 영업하고 위스키 만들기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자국 위스키가 필요한 이유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위스키는 곡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고부가가치 산업이에요. 둘째, 위스키 애호가들의 돈을 국내로 끌어올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자존심 상하잖아요. 우리처럼 술 좋아하는 민족이. 일본, 대만 등 어느 정도 사는 나라는 다 고급 위스키를 생산해요. 사람들이 '너희 나라는 위스키 뭐 있어?' 물을 때 속상하더라고요."
위스키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에 대해 다케쓰루는 "미즈와리(미지근한 물 타 마시기)"를 추천했다. 김 대표는 "원샷 하지 말고 소량을 입안에 펴 바르는 느낌"으로 마실 것을 권했다. 그는 다케쓰루 책을 번역하며 '겸손과 정직'을 배웠다고 했다. "책을 보면 이분은 '내가 뭘 했다'가 아니라, '그때마다 귀인이 나타났다'고 해요. 그런 사람이니 얼마나 위스키를 정직하게 만들었을까요? 저도 그런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