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좌판은 지하철역으로 가는 마트 앞 길목에 있다. 많은 이가 지나다니는 데다 비탈진 좁은 길이어서 발걸음에 가속이 붙는다. 취급 물품은 한눈에 들어올 만큼 단출하다. 멸치나 다시마로 국물을 낼 때 쓰는 삼베 주머니, 장독 덮개망과 찜기용 면보 대·중·소 각 3종, 흰색·노랑·검정 고무줄과 바느질 가위, 검은색 인조 가죽 동전 지갑, 구둣주걱, 휴대용 돋보기 등이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출근하는 무리가 사라지면 할아버지의 거리는 더욱 느릿느릿 흐른다. 좌판 앞에 누군가 걸음을 멈추고 말을 붙이면 내가 더 반갑다.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이는 여지없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다. 퇴근길에도 좌판은 거의 줄지 않았고, 뭔가를 사려 해도 필요한 게 없다. 할아버지의 관심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가는 이들을 보면 적적함이 덜 하시려나? 집을 향해 느릿느릿 걷다가 생각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할아버지의 좌판을 전시장에 옮겨 놓는다면, 미래의 큐레이터는 연결되지 않는 물건을 어떤 스토리로 엮어낼까?'
고려의 왕실, 사찰, 세속이란 세 공간을 중심으로 특별전을 준비하던 여름, 다양한 물산이 드나들던 국제도시 개경의 첫인상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심 중이었다. 두려움 없이 먼 바다를 항해한 상인을 새긴 '거울', 지금도 이슬람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개경 출토 '유리 주자',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한 외국어 학습 교재인 '노걸대'를 함께 배치했다. 이국적인 것을 좋아하던 개경 사람들의 식탁에 놓인 물건도 전시장의 프롤로그에 자리 잡았다.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유물이 우리가 잊고 있던 시간을 안내해주듯이 할아버지의 좌판도 훗날 큐레이터의 근사한 진열장이 될 수 있다.
긴 장마 끝에 찾아온 햇살이 반갑다. 내일은 할아버지가 나오시려나. 누군가는 장독 덮개망을 찾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