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코로나 백신을 담은 약병.

코로나라는 최악의 바이러스에 습격당한 인류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맞서고 있다. 그중에서도 궁극적인 ‘무기’가 될 백신 개발에 전세계 167팀이 뛰어들었고 주요국들은 백신을 빨리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입 중이다. 변칙적으로 빨리 번지는 코로나에 맞서기 위한 변칙적인 스피드의 백신 개발이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투입한 돈만 100억달러. 이밖에 주요국은 모두 백신 개발과 생산에 앞다퉈 돈을 들이붓고 있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디로 흘러들어가고 있을까.

백신 개발 단계는 보통 임상 전(동물 실험)―1상 임상(건강 문제 없는지 소규모로 확인)―2상 임상(소규모 약효 확인)―3상 임상(약효·부작용 대규모 실험)으로 이뤄진다.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하는 치료제와 달리 백신 임상은 건강한 사람만 하며, 3상이 특히 오래 걸린다. 백신을 수천~수만 명에게 맞힌 다음 임상 참가자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1~3상에는 보통 5년이 넘게 걸리고, 10년 이상이 필요한 경우도 적지 않다. 3상을 하다가 바이러스가 자연히 소멸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개발을 시도한 백신이 3상까지 무사히 마치고 시장에 나올 확률은 약 7%다. 코로나 백신은 29개 팀이 1상 이상을 진행 중이다.

◇3상 돌입 6팀…모더나 주가는 3.7배 상승

코로나 백신은 임상 단계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축지법 작전’(Operation Warp Speed·미 정부의 코로나 백신 개발 지원 프로젝트 이름)이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모더나 레이 조던 최고대외협력담당자(CCA)는 본지 인터뷰에서 “원래는 1상이 끝나고 나서 2상, 2상이 끝나야 3상을 진행했지만 지금은 1~3상을 뭉뚱그려 동시에 진행 중이다. 3상 후 당국 승인도 ‘긴급 승인’ 형태로 간소화할 가능성이 커 백신 개발 시간이 이례적으로 단축되는 것”이라고 했다. 모더나는 이르면 올해 말, 혹은 내년 여름 정도면 백신을 내놓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 리처드 해쳇 CEO는 “회사들이 1~3상을 순차적으로 진행한 이유에는 비용 문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1상이 실패하면 2·3상은 무용지물이 될 텐데, 이를 미리 진행해 막대한 돈을 투입하긴 위험하지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정부·국제기구가 돈을 줄 테니 ‘일단 빨리 진행하라’고 합니다. 손실 위험이 그만큼 적어져 한꺼번에 임상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런 ‘패스트트랙’ 덕분에 이미 3상에 들어간 팀이 여섯 곳이나 된다.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영국·스웨덴), 모더나(미국), 시노백·시노팜(이상 중국), 바이오앤텍―푸싱파마―화이자(독일·중국·미국), 그리고 3상을 진행하는 와중에 백신 승인을 먼저 했다고 11일 발표한 러시아 가말레야 연구소 등이다. 이 회사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관련주 주가는 대부분 올라 있다. 상승 폭은 약간씩 다르다. 대체로 백신 값을 높이 부르겠다고 한 회사일수록 주가가 많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대신 이런 회사는 때로 여론의 비난을 받는다.) 한 번 접종에 50달러 정도를 받겠다고 최근 발표한 모더나는 연초 이후 주가가 3.7배로 올라 있다. 영국 증시에 상장된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값을 1회 접종에 3~5유로 정도로 최소한만 받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연초 이후 주가 상승 폭이 11% 수준에 그치고 있다. 모더나는 직접 개발과 생산까지 하는 반면, 아스트라제네카는 생산·마케팅을 주로 담당하고 연구·개발은 옥스퍼드대가 대부분 진행 중이란 점도 차이다.

세계 최초 코로나 백신을 승인했다고 발표한 러시아의 한 연구원이 백신을 살피고 있다.

◇위탁생산은 한국이 ‘강세’…약병·주사기 수요도 오른다

백신이 일단 3상을 성공하고 나면 관건은 생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위탁 생산은 한국과 인도가 경쟁력이 있다. 한국은 SK바이오사이언스·녹십자·삼성바이오로직스·유바이오로직스·일양약품 등이 선두 주자로 꼽히고 인도는 혈청연구소(Serum Institute of India)가 아스트라제네카 등 주요 회사들과 속속 백신 생산 계약을 맺고 있다. 백신면역개발연합(GAVI) 세스 버클리 CEO는 "각국 정부는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는 즉시 백신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 상당수의 위탁 생산사는 임상에 사용할 양 이상으로 이미 백신을 생산하며 3상 통과 즉시 약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위험천만한 '도박'이겠지만, 각국 정부와 GAVI·CEPI 같은 국제기구가 이미 백신 개발금을 지원했거나 지원하기로 약속한 상황이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만약 백신이 마지막까지 임상을 통과하지 못하면, 잉여분 백신은 모두 버려야 한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된 후 필요해질 부수적인 물품들도 있다. 백신을 담을 유리병과 주사기 등이다. 미국 정부는 내구성 좋은 유리병을 확보하기 위해 뉴욕주에 있는 코닝에 6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저개발국을 포함한 글로벌 백신(20억회분) 공급 계획을 수립 중인 CEPI와 GAVI는 최근 이탈리아 유리 회사 스테바나토와 유리병 1억병 계약을 맺었다. 독일 게레스하이머·쇼토 등도 코로나 백신용 유리병을 생산할 전망이다. 아울러 미국·캐나다 정부는 세계 주사기 시장 점유율 1위인 벡톤디킨슨(BD)과 각각 주사기 1억9000개, 7500만개 계약을 체결했다. 영국도 6500만개를 주문했다. BD는 지난달 코로나 백신을 위한 주사기 생산 시설 증설에 7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 중 4200만달러가 미 정부 지원금이었다.


◇[30초 경제] Operation Warp Speed

미국 정부의 백신 개발·생산·확보 프로젝트가 군사작전(operation)이라고 불리는 것은 실제 미 육군 병참지휘부 구스타브 페르나 사령관이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은 군사작전에 이름을 붙일 때 '충격과 공포(이라크 침공 작전)'처럼 지휘부의 의지를 담은 은유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워프 스피드(warp speed)'는 1930년대 미국 공상과학 소설가인 존 캠벨이 상상해 낸 개념이다. 주인공이 시공간을 뒤틀어(warp)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1970년대 인기리에 방영됐던 SF 드라마 스타트렉을 통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라는 뜻을 담은 관용 표현처럼 쓰이다보니, 일부 미국인은 북한의 선전 가요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에서 축지법을 영어로 의역할 때도 이 단어를 쓴다. 그만큼 미국 정부가 초고속으로 백신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보통 백신 개발엔 최소 73개월이 필요한데 미국 정부는 내년 초까지 14개월 안에 3억명분 백신을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스타트렉 '와프 스피드'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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