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투표가 선거를 조작할 것"이라고 거듭 주장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정작 자신은 오는 11월 대선 때 주소지인 플로리다주에서 우편투표를 하기 위해 신청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는 지난해 9월 뉴욕 맨해튼에서 자신 소유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로 주소를 이전했다.

우정국 총재 집앞에 '봉투 시위' - 1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루이스 디조이 연방우정국 총재의 자택 출입문에 시위대가 우편투표 봉투처럼 생긴 종이를 끼워넣고 있다. 시위대는 디조이가 우편투표를 반대하는 트럼프를 위해 일부러 우편물 처리를 지연시키려 한다고 비판한다.

16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의 선거 안내 웹사이트에서 '우편투표 추적하기' 메뉴를 선택해서 트럼프 대통령 정보를 입력해 보니, 지난 12일 우편투표를 신청해 투표용지가 발송된 사실이 조회됐다. 영부인인 멜라니아도 같은 날 우편투표를 신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도 "우편투표는 선거 역사상 가장 큰 사기가 될 것"이라고 했었다. 플로리다에서 우편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용지를 신청한 다음 날에도 우편투표를 공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주드 디어 백악관 부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편적 우편투표를 선호하지 않는 것이지, 부재자투표는 선호한다"고 14일 워싱턴포스트(WP)에 해명했다. 그러나 투표 방식은 둘 다 큰 차이가 없다. 우편투표는 주(州) 선관위가 유권자들에게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보내고 기표 용지도 우편으로 받아 집계하는 것이다. 해외 파병·장애 등의 이유로 투표장에 나와 투표하기 어려운 이들이 우편으로 투표하는 게 부재자투표인데, 우편투표는 누구나 신청하면 가능하도록 이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 등의 여파로 올해 미 대선에서는 우편투표가 광범위하게 시행될 전망이다. WP는 전체 유권자의 77%가 우편투표를 이용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2016년 대선 때 우편투표를 이용한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24%였다.

우편투표가 승패를 가를 수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뒤처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우편투표를 방해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감염 위험에 민감한 유권자일수록 우편투표를 신청할 확률이 높은데, 대체로 민주당 지지층이 마스크를 더 적극적으로 착용하는 등 코로나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연방우정국이 평소보다 늘어난 우편투표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250억달러(약 30조원)의 추가 예산을 투입하자는 민주당 요구도 거절했다. 이 때문에 연방우정국은 최근 미 50 주 가운데 46 주에 "11월 선거를 위해 메일로 발송된 투표용지가 개표 기한 전에 도착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일부 주에서는 우편투표를 하려는 유권자가 예년보다 10배쯤 늘 것으로 전망되는데, 연방우정국 우편물 처리 능력이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경고받은 주에는 '경합주'로 분류되는 플로리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이 포함됐다.

트럼프가 6월 임명한 루이스 디조이 연방우정국 총재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디조이 총재는 취임 후 우정국 비용 절감을 이유로 초과근무를 하지 말고, 우편물을 그냥 놓아두고 퇴근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가 트럼프의 뜻을 헤아려 일부러 우편물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런 우정국 지침 변경이 연방 규정에 부합하는지 감사를 요청해 우정국 감사관이 14일 감찰에 착수했다.

15일 워싱턴DC에 있는 디조이 총재 자택 앞에는 수십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현대 정치사에서 대놓고 국민이 투표를 못 하도록 하려는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트럼프 측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