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700억 할인쿠폰 정책

코로나 와중에 외식·공연 할인 쿠폰 뿌리며 외출과 소비 독려에 나선 경제 당국의 ‘1700억짜리 할인쿠폰 정책’이 결국 조기 중단됐다. 15일 농식품부는 “외식 활성화 캠페인을 16일 0시를 기해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고, 문체부도 “이미 배포한 영화·박물관 할인 쿠폰은 철저한 방역하에 쓸 수 있지만, 16일 이후 추가 배포는 잠정 중단한다”고 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며 방역 당국이 16일 0시부로 서울·경기 지역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발령하면서, 정부 한 쪽에선 ‘집 밖에 나가지 말라’하고 한 쪽에선 ‘할인쿠폰 줄 테니 나가라’는 모순된 상황이 펼쳐지자 부랴부랴 행사를 중단한 것이다. 14일 오후 4시 외식 할인 이벤트를 시작한지 하루반만이다. 정부가 이벤트 홍보는 대대적으로 해놓고 종료 소식은 제대로 알리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 코로나 와중에 신중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코로나 와중에 외식하러 나가보니…

4인 가족 가장인 기자와 솔로인 기자가 각각 14~15일에 정부의 ‘외식·공연 할인 쿠폰’을 실제 써보니 아쉬운 점이 많았다. 외식 할인은 매 주말(금요일 오후 4시~일요일 자정)에 회당 2만원 이상, 누적 6번 외식을 하면 1만원을 환급해주는 구조다.

우선 코로나 방역 원칙과 정면 배치된다. 15일 오후 가족과 외식하러 나갔는데, 자동차 이동 경로상 지나치는 각 지자체에서 발송하는 코로나 확진자 관련 긴급 알람이 수시로 울렸다.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빙수를 먹었는데 ‘음식·음료를 섭취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마스크를 끼라’는 정부 지침과 달리 모두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외식을 서둘러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에 자녀와 가려고 했던 영화 예매를 취소했다. 영화 시작 3시간 전에 정세균 국무총리 명의로 “코로나 확산이 심각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한다”는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영화 관람을 권고한다며 6000원 할인 쿠폰을 뿌렸지만, 극장은 밀폐 구조인데다 두세 좌석마다 한 자리씩 비워놓는 정도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저녁은 ‘외식 할인’ 실적을 쌓기 위해 배달 앱으로 피자를 주문했다. 정부는 음식 배달도 외식으로 인정하지만, 앱 선결제가 아닌 배달원을 만나 카드를 긁는 현장 결제만 인정한다는 지침을 줬다. “배달 앱이 장 보기, 편의점 배달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있어 앱 결제시 외식 구분이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앱에서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사전 결제하고 음식은 비대면 수령해달라’는데, 정부의 지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면 결제·수령’을 택했다. 나 혜택 받자고 하루종일 오토바이타고 여러곳 다니는 배달원을 문 앞에 붙잡고 카드 결제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다른 기자가 15일 만난 중국음식 배달원은 “이렇게 직접 카드 결제한 경우는 거의 한 달 만에 처음인 것 같다”며 “요즘은 집 앞에 놓고 가달라는 주문이 많아 얼굴 볼 일이 없었다”고 했다.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편중

할인 쿠폰은 쓰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편중된다. 카카오톡, 당근마켓, 유튜브를 쓸 줄 아는 60대 장모에게 외식 할인 쿠폰을 알려주자 처음에는 ‘그런게 있었냐’며 반색했지만, 카드사 앱을 깔아서 회원 가입하고 따로 응모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하자 ‘젊은 사람들만 하라는 얘기네’라며 포기했다.

1990년생 ‘밀레니얼 세대’인 솔로 기자가 찾는데도 응모 신청이 쉽지 않았다. 카드사 홈페이지와 앱에서 ‘이벤트’ 메뉴를 찾아 ‘응모 신청’을 눌러야 하는데, 결국 15분가량 씨름한 끝에 간신히 신청을 했다.

이미 혜택은 할인 소식에 밝은 이들만 독식 중이었다. 일부 인터넷 카페에선 4만원쓰고 본인 명의의 A, B카드로 2만원씩 쪼개 결제하고, 10만원 나오면 5명이 각자 카드로 쪼개는 등 ‘세금 쿠폰 따먹기 노하우’가 퍼지는 중이다. 선착순 세금 쿠폰을 특정 계층이 무제한 중복 수령할 수 있는 구조다.

6회 외식해 할인 받는다고 끝이 아니라, 12회·18회 쓸 때마다 카드사가 계속 돌려주는 방식이다. 1700억원 세금이 투입됐는데도 신청할 줄 모르는 중장년층은 배제되고, 미리 신청해 전략적으로 쓰는 일부 계층만 혜택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전국 600만을 넘어선 1인 가구는 현실적으로 외식 할인 기준(2만원)을 넘겨 쓰기가 쉽지 않다. 최근 결혼한 직장인 노유미(31)씨는 “2만원은 둘이서 카페에 가도 잘 나오지 않는 돈”이라며 “무리하게 주문하지 않는 이상 혜택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지원 대상인 소상공인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시내 번화가의 레스토랑, 카페에는 사람이 쏠리지만 동네 뒷골목의 영세 식당은 혜택보기 어렵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제과점 직원 윤모(35)씨는 “외식 쿠폰이 풀렸다는건 뉴스봐서 알긴 하지만, 손님 대부분이 몇천원 정도를 쓰는데 ‘2만원 넘게 사야 혜택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면서 “쿠폰 이후에도 아직 매출은 변화가 없다”고 했다.

◇고맙긴한데… 최선의 방식인가

‘실효성’도 의문이다. 외식은 2만원씩 6번, 최소 12만원 써야 1만원 돌려주는 9% 정도의 할인율이다. 문제는 이미 더 좋은 할인도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과점은 결제 금액과 무관하게 통신3사 멤버십으로 최고 10%씩 할인이 된다. 배달앱도 젊은이들이 잘 쓰는 카카오 체크카드로 2만원 이상 결제하면 10%가 할인된다. 기자가 15일 정부의 ‘영화 6000원 할인’ 쿠폰 2장으로 자녀와 어린이 영화를 보겠다고 하자, 아내가 ‘통신사 제공 무료 관람권’과 7000원 할인되는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이미 민간에서 시장 논리로 다양한 할인 쿠폰을 뿌리고 있고, 젊은 소비자들은 발빠르게 알아서 혜택을 찾아쓰고 있다. 물론 중복·추가 할인도 되지만 수해 복구 예산을 위해 ‘4차 추경’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굳이 정부가 복잡한 할인 원칙을 만들어가며 세금으로 선착순 쿠폰을 뿌려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부가 온라인 쇼핑몰 운영하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정된 세금이라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상황이 어려운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에 직접 지급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