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집 안에만 갇혀 있기가 괴로워 길지 않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마스크 단단히 쓰고 손 소독제 잔뜩 챙겨 남쪽 지방 몇 군데를 차로 돌아봤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처음 가보는 지역으로 떠났는데도 별로 곤란한 일이 없었다.

다들 그렇듯 나의 여행 인생도 가이드북 시대와 스마트폰 시대로 크게 나뉜다. 새 시대에 접어든 지 이미 여러 해 지났으나 여전히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토록 쉽고 간편한 여행이라니. 이번에도 포털 사이트에 지명을 검색하는 것만으로 여행의 99%를 해결했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매긴 '가볼 만한 곳' '맛집' 랭킹이 있어 국내외 어딜 가든 든든하다. 리뷰 두어 개 읽고 사진 서너 장 훑어보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1~5위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크게 실패할 일 없다. 어차피 시간도 별로 없다.

포털과 연동된 지도 앱에 목적지를 찍고 가라는 대로 갔다. 한국의 시골 동네는 물론 해외 낯선 도시를 가더라도 지도 앱이 시키는 대로 타라는 걸 타고 내리라는 데서 내리면 대중교통 이용까지 매끄럽다. 그마저 귀찮으면 우버나 택시를 부른다. 지구상 웬만한 곳은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게 가능해졌다. 낯선 환경을 맞닥뜨려도 예전만큼 긴장되지 않는다.

최수현 스포츠부 기자

다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이런 여행에 치명적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소중한 여정이 머릿속에서 너무 빨리 사라졌다. 2년 전쯤 들렀던 속초의 한 식당을 최근 다시 가보려 했다. 어렴풋이 좋았던 느낌만 남아 있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당시 검색하다 우연히 걸려들어 내비게이션에 찍고 찾아갔던 곳이어서 이름도 위치도 기억나지 않았다. 검색하다 우연히 걸려든 또 다른 식당을 내비게이션에 찍고 찾아가는 것으로 대신하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머물다 돌아와서도 그 지역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 또렷한 인상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점과 점이 잘 연결되지 않고, 전체적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생각 없이 찍어댄 사진 수백 장이 스마트폰 속에 뒤엉켜 있을 뿐, 머리와 가슴 깊이 여행을 간직하기가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가이드북을 마지막으로 샀던 게 언제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가이드북 시대의 여행은 책 한 권씩 쓸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생생하다.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정독하느라 몇 날 밤을 지새웠던가. 다 읽고 나서야 종이 지도 여러 장을 넓게 펼쳐놓고 취향과 필요에 맞는 것들을 엄선해 색깔별로 동선을 그렸다.

지하철 무슨 역에서 내려 어느 출구로 나와 몇 분간 걸어야 하는지, 몇 번째 코너에서 어느 방향으로 돌아 어떤 건물이 보이면 몇 걸음쯤 더 가야 하는지 외우다시피 했다. 가던 길을 잘못 들어도 뜻밖의 풍경을 발견하면 가슴이 벅찼다. 어느 도시 어느 골목에서 맡았던 비릿한 냄새, 어느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베어 물었을 때 입 안 가득 퍼지던 아삭함 같은 감각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몸으로 부딪혀 몸에 새긴 기억이기 때문이다.

숱하게 여행기를 써온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이라는 행위의 본질이 여행자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 편리해서 금세 휘발해버리는 여행, 너무 정확해서 예측 못 한 발견을 아예 할 수 없는 여행으로는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다만 궁금하다. 뭐든 화장지 뽑아 쓰듯 툭툭, 쉽고 가벼운 것에만 길드는 동안 나는 무엇을 놓쳤는지.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 차곡차곡 살아가는 법을 다 잊어버릴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