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의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카멀라 해리스 연방 상원의원(캘리포니아·55)에겐 자신의 정계 진출을 도와준 멘토였지만, 결국은 커다란 짐이 된 인물이 있다. 현재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노니클에서 칼럼을 쓰고 있는 윌리 브라운(86)이다. 브라운은 캘리포니아 주(州)의회 의장을 17년간 역임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첫 흑인 시장을 지내는 등 2000년 초까지 30여년 간 캘리포니아 정가를 쥐락펴락하던 흑인 정치인이었다.

2005년 한 행사에서 만나 서로 활짝 웃는 해리스와 브라운

정치적 야망이 컸던 해리스는 30세였던 1994년 브라운의 도움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부촌인 퍼시픽 하이츠(Pacific Heights)의 민주당 지지 부호들의 파티에 낄 수 있었다. 브라운 당시 주의회의장은 고액 연봉을 받는 시 산하의 2개 위원회 이사 직에 해리스를 임명했다. 브라운은 바람기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해리스는 아내와 별거 상태인 그와 사랑에 빠졌다.

1994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파티에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은 카멀라 해리스와 윌리 브라운 주의회 의장

그러나 둘의 관계는 얼마 가지 않았지만, 이후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으로 정치 이력을 쌓아간 해리스에게 브라운은 계속 짐이 됐다. 해리스는 공화당 정적(政敵)들로부터 “윌리의 매춘부(Willie’s ho)”라는 인신공격을 당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이 표현을 자신의 트위터에 리트윗했다.

◇30세의 해리스, 60세의 주 의회의장과 염문
로스쿨을 졸업하고 4년간 카운티 검사보로 일하던 해리스는 1994년 봄 당시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장인 브라운을 만났다. 해리스의 아버지보다도 네살 많은 유부남이었지만, 해리스는 브라운과 사랑에 빠졌다. 브라운은 캘리포니아 사교계에서 플레이보이로 유명했고, 아내와 별거 중이었다.
해리스는 그 해 6월 카운티 검사를 사직했고, 브라운은 해리스를 주의 실업보험 청원위원으로 임명했다. 9만7000달러 연봉(현재 16만7000달러)짜리 고위직이었다. 5개월 뒤, 브라운은 다시 연인인 해리스를 주(州)의료지원단 이사에 임명했다. 해리스는 연봉 7만 달러(현재 12만 달러 가치)를 받고 1998년까지 일했다. 이 직책은 주 정부 고위직의 은퇴 코스여서, 해리스는 가장 어린 이사였다. 두 직책 모두 한 달에 한두 시간 모여 회의하고 주 상원의원 봉급을 받는 '낙하산' 자리였다. 또 브라운은 해리스에게 민주당 부호들의 칵테일 파티 매너와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다양한 의상, 말투까지 모든 것을 가르쳤다.

윌리 브라운은 작년 1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낸 "그래, 카멀라 해리스와 데이트했다, 그래서어쨌다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맞다, 우리는 데이트했고, 20년도 더 된 얘기다. 맞다, 내가 주의회 의장일 때 두 개의 주 위원회에 그를 임명해 해리스의 경력에 도움을 줬을 수도 있다"고 시인했다.

2018년 샌프란시크코의 한 행사에 참석한 전 시장 윌리 브라운

둘 사이의 ‘사랑’은 짧았고, 1995년 쯤엔 끝났다. 그 해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된 브라운은 유명한 사교계 여성과 사랑에 다시 빠졌고, 딸까지 낳았다. 그러나 ‘정치적 멘토’로서 그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브라운은 2003년 샌프란시스코시 지방검사 선거에 나선 해리스를 적극 도왔고, 해리스는 당선됐다. 이 선거에서 상대방은 “해리스의 남자친구”를 계속 언급하며 공격했다.

◇해리스 "브라운은 목에 걸린 알바트로스"
시 검사가 된 해리스는 이후 브라운을 도무지 지울 수 없는 과거의 거대한 골칫거리를 뜻하는 '알바트로스'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2003년 샌프란시스코 위클리는 "해리스와의 과거 염문을 언급만 해도, 해리스의 어깨는 긴장되고 눈은 좁아진다"고 했고, 해리스 자신도 "브라운의 정치인생은 끝났고, 나는 앞으로도 40년은 더 가야 한다. 그에게 전혀 신세 진 게 없다. 그도 나를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두려울 거다. 그는 끝났다. 이제 좀 나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작년 1월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한 해리스의 유세 현장에도 “윌리 브라운의 매춘부는 안 된다(Just say no to Willie Brown’s ho)”는 반대파의 플래카드가 따랐다.

해리스를 정치적 멘토 윌리 브라운의 '매춘부'로 묘사해 소설미디어에 나도는 그림


◇ 브라운의 정치적 '쌍둥이' 자녀
30여년간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 정계를 주름잡은 브라운에겐 정치적으로 두 '자녀'가 있다. 현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개빈 뉴섬(52)과 카멀라 해리스였다. 해리스가 브라운의 도움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부촌 퍼시픽 하이츠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뉴섬은 바로 퍼시픽 하이츠 출신이었다.

지난 1월 개빈 뉴섬의 주지사 당선을 축하는 카멀라 해리스 연방상원의원. 두 사람은 윌리 브라운의 두 정치적 자녀다

두 사람은 브라운의 멘토링 속에서 경쟁적으로 성장했다. 뉴섬은 윌리 브라운의 뒤를 이어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됐다. 뉴섬이 캘리포니아 부(副)지사였을 때, 해리스는 주 법무장관이었다. 두 사람은 2019년 제리 브라운 주지사의 은퇴를 앞두고, 서로 후임 주지사 선거에 나서겠다고 맞붙었다. 그러다가 2017년 1월 바버라 복서 주 연방상원이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다. 자연스럽게 뉴섬은 주지사 선거로, 해리스는 복서의 후임 연방상원의원 선거로 정리가 됐다.

윌리 브라운과 카멀라 해리스는 작년 5월 샌프란시스코의 한 흑인사회 신문 기념 파티에서 조우했다. 해리스는 카메라가 계속 터지자, 포옹 없이 마지못해 잠깐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브라운의 오랜 친구가 브라운에게 “당신 대단해. 뉴섬을 주지사로 만들더니 이제는 해리스야”라고 하자, “윌리는 ‘그(해리스)는 내가 누군지도 몰라”라고 대꾸했다”고 미 주간지 뉴요커에 전했다.

해리스는 2014년 8월 로스엔젤레스 영화계 변호사로 두 아이를 둔 백인 이혼남인 더글러스 엠호프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