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철이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옥수수를 판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지금처럼 옥수수를 많이 먹고 살지 않았다. 우리가 직접 소출(所出)한 것 외엔 먹기가 힘들었다. 돈이 귀했다. 시골 사람들은 대부분 자급자족했다. 몸소 심어 가꾼 옥수수를 수확해 먹던 그 시절에 아버지는 연한 것을 좋아하고 오빠랑 나는 똑똑 여문 것을 추렸다.
옥수수는 몸을 감싼 잎 속에 자루를 숨기듯 키웠다. 몸에 붙어 자란 뒤 알갱이가 먹을 수 있을 무렵이 되면 붉은 수염을 달고 볼록하게 몸을 드러냈다. 낱알이 굳어지며 맛이 들 무렵 아기를 업은 모습의 옥수수는 내어줄 것 다 주고 자루가 가늘어졌다. 옥수수를 보자면 그 모습을 닮은 어머니가 간절해졌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전화했다. "옥수수 수염이 다 고스러졌다." 옥수수가 익을 대로 익었으니 네가 오면 꺾어 쪄 먹자, 하는 말이었는데 내가 때를 맞춰 갈 수 있을 때도 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다. 엄마는 우리를 기다리느라 제때 못 먹었다. 그 뒤 어느 젊은 농부가 알려 줘 옥수수를 한 이랑씩 일주일 간격을 두고 심었다. 일주일 차이로 익어 한꺼번에 씨알이 굳어 쪄먹을 수 없게 되는 일은 없었다. 씨알이 굳어버린 옥수수는 알을 털어 볶아 차를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옥수수를 심지 않았다.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크고 긴 옥수수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심은 것이 먹고 싶어 물었다. "옥수수 왜 이제 안 심으세요?" 어머니는 답했다. "심는 것이야 일 아니다. 따 먹고 나서 대를 뽑아낼 기운이 없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옥수수는 공기 뿌리(대기에 노출되어 있는 뿌리)까지 굳건하게 땅을 움켜쥐고 아래로 뻗는다. 수확 후 밭에 남은 대를 뽑아내야 다른 작물을 심는다. 우리는 어머니를 갉아먹는 물컷(이, 빈대 등 사람 피 빨아 먹는 벌레를 뜻하는 전남 방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