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란팅(藍廳·푸른 방)이라고 불리는 중국 외교부 내외신 브리핑룸에서는 매일 오후 3시(현지 시각) 중국과 관련된 각종 문답이 오간다. 북핵(北核)도 그중 하나다. 최근 미·중 관계가 신(新)냉전으로 치달으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톤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브리핑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리의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인)하여 이 땅에 더는 전쟁이라는 말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말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왕 대변인은 "한반도 대화 프로세스가 강경 국면에 빠졌고, 문제는 북한의 합리적인 이익이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반도 비핵화가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란 언급도 없었다.

중국 외교부가 "북한의 합리적인 이익"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6월 12일부터다. 화춘잉 대변인은 "(한반도 문제 교착은) 북한의 합리적 이익이 해결되지 않은 것이 주원인"이라고 했다. 이후 중국 외교부는 북핵 문제가 나올 때마다 "북한의 합리적 이익"이라는 문구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미·중 갈등이 본격화된 시점과 때를 같이한다. 지난 6월 하와이에서 만난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 위원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중이 연일 치고받던 시점에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는 언급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몇 년간 미·중은 북한 비핵화를 공동 관심사이자 공통의 이익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연일 북한의 이익을 강조하는 중국의 태도를 보면서 중국이 북핵을 대미(對美) 전략의 '카드'로 쓰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심지어 6·25 때처럼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는 뜻)' 전략이 다시 가동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올 들어 중국이 코로나, 홍콩 문제로 서방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맨 먼저 중국을 감싼 나라는 북한이었다. 김정은은 핵보유국을 강조한 지난 27일 연설에서 "혁명전쟁(6·25)을 피로써 도와주며 전투적 우의의 참다운 모범을 보여준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과 노병들에게도 숭고한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올해는 중국이 북한을 돕기 위해 6·25에 참전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졌던 이유 중 하나는 천안문(天安門) 사태로 인한 서방의 제재와 압력에서 탈출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한국은 수교를 서두르면서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도발을 억제해 주길 기대했고, 그런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오곤 했다. 2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