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메릴

에린 칼슨 지음|홍정아 옮김|현암사|416쪽|2만원

1976년 한 젊은 여배우가 영화제작자 디노 데 라우렌티스의 리메이크 영화 '킹콩' 오디션을 보러 갔다. 뉴욕 연극 무대를 제외하면 무명이었고 영화 쪽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긴 금발머리, 도자기 피부, 도드라진 광대뼈, 매부리코의 조합은 전형적인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짜 못생겼네. 뭘 이런 걸 데려왔어?" 데 라우렌티스는 이탈리아어로 아들 페데리코에게 불평했다. 명문 배서대학 출신의 이 배우는 이탈리아어를 알았다. "기대만큼 예쁘지 않아서 죄송한데요, 어쩝니까? 보시는 게 다인데." 그는 이탈리아어로 또박또박 말하고 박차고 나왔다. 그는 오스카상 후보 최다 선정 기록 보유자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로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소피의 선택'(1982)과 '철의 여인'(2011)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일흔 넘은 나이에도 제니퍼 로런스(30)만큼이나 돈을 많이 벌고 있다. 메릴 스트리프(71) 이야기다. AP통신 엔터테인먼트 기자 출신인 저자는 뉴저지 태생의 재기발랄한 여성이 뉴욕으로 가 연기활동을 시작하고, 결혼해 네 아이를 키우며 할리우드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과정을 드라마처럼 그려낸다. 고교 시절 인기 있는 여학생들을 흉내내 교내 '홈커밍 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메릴의 첫 '연기'였다. 흉내내기가 메릴의 가장 큰 강점이다. 극중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메소드 연기와는 거리가 멀다. '메소드 쟁이' 더스틴 호프먼과 부부로 출연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격하게 붙었다. 더스틴은 신인 메릴을 함부로 다뤘다. 아내의 가출 장면을 찍던 중 메릴의 뺨을 손자국이 나도록 때렸다. 극본에 없는 행동이었다. 우여곡절 많은 이 영화로 메릴은 첫 오스카상을 받는다. 이후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등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간다.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메릴 스트리프. 그는 촬영이 끝나는 순간 배역을 완전히 내려놓는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끔 가다 용솟음치곤 하지만 그러고는 또 게을러진다”고 했다.

사회문제에 대해 줄기차게 목소리 냈다. 1990년 8월 미국배우조합 여성회의에서 연설했다. "여성 주연 배역들이 주로 매춘부인 마당에, 마흔 넘은 여자들에게는 일거리가 별로 없어요. 여배우들도 꼭 매춘부들처럼 그 나이가 되면 상업적인 매력이 사라지나봅니다." 그해 초 개봉한 '귀여운 여인'을 겨냥한 말이었다. 여배우 출연료가 남자 배우의 40~60% 선이던 할리우드 관행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래요. 전 잭 니컬슨처럼 선불로 1100만달러를 한 번에 받는 그런 배우가 아닙니다." 2016년 대선 때는 장애인 기자를 모욕한 트럼프를 비판했다. 화가 난 트럼프는 새벽 4시 트위터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과대 평가된 여배우"라고 썼다.

일찍부터 투사였지만 자신을 위해 흥정하는 법을 처음 배운 건 쉰다섯 살에 이르러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에서 잡지사 편집장 미란다 역을 맡았을 때, 처음 제의받은 출연료가 예상보다 적었다. 출연을 거절하려 하자 액수가 두 배로 올랐다. 메릴은 '미란다'에게 힌트를 받아 영화사 제의보다 더 높은 금액을 불렀다. 메릴은 주변 남성 권력자들을 모델 삼아 미란다 캐릭터를 만들었다. 목소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따라 했다. 유능하고 강인한 보스 연기에 남자들도 감복했다. 난생처음 남자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전 그 느낌이 뭔지 이해해요. 저도 그런 일을 하거든요."

저자는 “메릴은 ‘디어 헌터’(1978)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여자친구 역할을 맡고, 더스틴 호프먼에게 뺨까지 맞으며 정말 먼 길을 걸어왔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스물한 번 오스카 후보에 오르면서 이제 두 사람 모두를 넘어섰다”고 썼다. 재미있는 책이지만 비판적 시각이 결여된 점이 아쉽다.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하비 와인스타인 성추행 폭로 사건 때 그와 한통속 아니냐 의심받은 메릴이 “제 평생 그가 자기 호텔방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라고 한 변명을 여과 없이 전하는 지점은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