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헝가리 정부가 내놓은 행정법원 설치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당 의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 항의하고 있다. /인덱스 뉴스 사이트

2018년 12월. 헝가리 국회의사당에는 사이렌과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법무장관의 지휘 아래 정치적 사건을 전담할 행정법원을 신설하는 사법 개혁안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집권 여당의 일방적 통과로 선포됐다. 무력한 야당이 외치는 항의 표시는 곧 묻혀버렸다. 2010년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피데스당이 집권한 이후, 정부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해임할 수 있게 법령을 개정했고, 정원 증원과 정년 축소로 사법부를 대거 친여(親與) 성향 법조인으로 대체했다. 검찰총장은 9년 임기로 측근을 임명하고 헌법재판소 권한을 축소하는 한편, 재판관 임명권을 가지는 특별위원회 투표권과 법원행정처장 임명권도 다수당에 부여했다. 행정법원의 설립은 '사법부 개혁'의 화룡점정이자 마무리 절차였다.

사법 파동으로 자유 지수 하락

2020년 1월 폴란드 바르샤바.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 법복을 입은 판사들이 대법원 계단을 내려와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치적 행동을 하는 법관을 정부가 해고 또는 징계할 수 있도록 하는 사법 개혁안에 반대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온 판사들이 침묵 행진을 벌였다. 2015년 집권한 카친스키 총리의 '법과 정의'당은 단독정부를 구성하고 곧이어 사법부 '개혁'에 들어갔다. 검찰법 개정으로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임하고, 검사와 법원장 임면권을 부여받았으며, 판사 선발권을 가진 국가사법위원회(KRS) 위원을 하원이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정년 축소로 대법원 판사 40%를 해임하고, 정원을 늘리면서 친여 인사를 새로 확보할 수 있는 법안도 발표됐다. 헝가리가 밟아온 절차는 폴란드에 본보기가 됐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두 나라의 시도는 예상치 않은 암초를 만났다. 유럽연합(EU)은 헝가리 행정법원 설립안에 우려를 표명하며, 보조금 삭감을 전제로 압박을 가했다. 오르반 정부는 한발 물러서 무기한 보류를 선언했다. EU는 청문회에서 헝가리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조치 철회를 다시 요구했다. 폴란드의 대법관 정년 축소·개혁안도 EU의 제지에 부딪혔다. EU 보조금의 큰 수혜자인 폴란드는 브뤼셀의 반발에 당초 계획에서 후퇴해서 대법관 복귀를 허용했지만, EU 집행위는 끝까지 소송을 고수했고, 2019년 6월 유럽사법재판소는 폴란드의 대법원 판사 정년 조정이 EU법에 반하고 사법 독립 원칙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EU 가치에 위배되는 국가를 제재할 수 있는 '리스본 조약 7조'는 유럽의 법치와 삼권분립의 마지막 견제 장치가 됐다.

그러나 EU의 조치가 산소호흡기를 낀 사법부의 연약한 호흡을 지켜주기는 했지만, 이미 수년간 사법 파동을 겪으며 와해된 삼권분립이라는 제도적 기반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리덤 하우스는 사법과 언론 자유의 심각한 제약으로 헝가리를 제한적 민주주의에서 혼합체제로 강등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대내적으로는 한때 헝가리의 개방과 세계화를 주창한 억만장자 금융가 조지 소로스가 배후에 선 일련의 음모로 치부됐고, 보조금을 손에 쥔 브뤼셀의 부당한 압력으로 전달됐다. 폴란드 역시 자유 지수에서 급속한 하락을 보였다.

민족주의·대중주의가 민주주의 압살

이재승 고려대 장 모네 석좌교수

헝가리 오르반 총리와 피데스당의 기반은 여전히 굳건하다. 코로나 사태 동안 비상법을 발효해 견제 없는 국가권력을 완성한 오르반 총리 지지율은 70%를 넘어섰고, 집권당도 50% 안팎 지지도를 유지하며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2개월 연기된 폴란드 대선에서도 두다 대통령은 야당 추격을 뿌리쳤다. "뭐가 문제지? 우리는 완벽한 법치를 이루고 있는데." 오르반 총리는 항변한다. 헝가리가 추구하는 건 러시아·중국·터키와 같은 "비자유적 민주주의"라고 공언했다. 마자르 민족주의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신의 한 수가 된 주변국 헝가리계 소수집단에 대한 투표권 부여는 대중주의 권력의 기반을 이룬다. 끊임없이 제공되는 혐오 선전과 정부가 나눠주는 복지 혜택은 특권층으로 보이는 판검사 몇몇을 갈아치우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게 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가짜 뉴스로 처벌할 수 있는 법 제도도 구비되어 있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원칙은,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긴박한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다.

동유럽사 권위자인 티머시 스나이더는 신권위주의의 부상을 "현재의 진실과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과거의 안온했던 전설로 회귀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진실보다는 과거의 전설이 힘을 가지고 미래를 대체할 때 폭정은 완성된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의 산물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으며 성장해 왔고, 그 희생이 자유와 삼권분립에 대한 원칙이 됐다. 그 뿌리가 취약할 때 민주주의는 민족주의와 대중주의의 연합군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도둑 정치(kleptocracy)'라 외치는 것만으로는 삼권분립 원칙을 지켜낼 수 없다. 우리에겐 가치 수호자로 개입해줄 EU도 없다.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의 충분한 대가를 치러왔는가. 나아가 삼권분립이라는 근본 원칙을 지킨다는 결기 못지않게, 대중이 소외되지 않도록, 과거의 전설보다는 현재의 진실과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게 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세계화와 성장에서 뒤처질수록 내향적 민족주의와 과거 회귀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쪽에서 거울처럼 비춰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