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통합당 의원의 5분은 강렬했다. 민주당의 임대차법 졸속 처리를 비판한 그의 국회 연설에 전례 없는 찬사가 이어졌고 대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자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얘기라 공감을 얻었다"고 했고, 어떤 이는 "명쾌한 전달력이 돋보였다"고 했다. 국민을 '피해자' 임차인과 '가해자' 임대인으로 나눠 갈라치려는 정권의 논리를 5분 만에 무너뜨렸다고도 했다.
필자는 첫 문장 '저는 임차인입니다'가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국민 눈높이에서, 약자의 시각에서 얘기하겠노라고 윤희숙의 첫 문장은 말하고 있었다. 윤 의원은 처음엔 '저는 임대인이자 임차인입니다'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나 '저는 임차인'이라고만 했다. 6억원짜리 서울 성북구 아파트를 세주고 서초구에서 7억원 세를 사는 상황을 굳이 '임대인이자 임차인'이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소통하는 방법을 알았다.
윤희숙의 5분은 역설적으로 통합당의 무능,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줬다. 통합당은 싸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 않아 늘 졌다. 큰 목소리에 강경 주장을 담는 게 잘 싸우는 게 아니다. 대중을 설득해 내 편으로 끌어오는 게 잘 싸우는 거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수는 '경멸'과 동의어다. 좌파를 지지하지 않지만 보수를 혐오하는 세력은 중도 언저리에 넓게 포진해 있다. 보수 정권 9년은 소통 실패 9년이었다. 스스로 잘나고 옳다는 확신에 찬 보수는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좋은 고기였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값싸고 좋은 고기 들여와 먹자는데 왜 난리냐'는 식으로 말할 일은 아니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였지만 여권 인사들 입으로 교통사고라고 말할 일은 아니었다. 보수는 꼰대, 가진 자, 호전주의자, 역사적 가해자, 악의 상징처럼 됐다. 야당이 되고서도 경멸의 대상이 된 이유를 알지 못했다. 통합당 대변인 얘기엔 귀 기울이지 않는 대중이 똑같은 말 하는 진중권에게 환호하는 장면을 넋을 잃고 쳐다볼 뿐이었다. 이런 정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소통 못하는 우파 맞은편에 '쇼통' 잘하는 좌파가 있다. 좌파는 늘 정의 공정 민주의 화신인 척했다. 약자 편인 척, 착한 척했다. 와이셔츠 차림의 커피 산책, 연예인 행사, 눈물 쇼, 죽창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젠 아무나 쇼를 하겠다고 나서는 지경이다. 욕망의 화신 법무장관은 절을 찾아 '번뇌를 끊는다'며 뒷모습을 찍어 올리고, 검사는 병상에 누워 피해자 쇼를 한다. 거듭된 무능과 실정, 위선에도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웃도는 것은 '좌파는 정의·소수편'이란 허구의 성채가 견고하기 때문이다.
쇼는 쇼일 뿐이다. 공정과 정의의 민낯이 조국을 통해 드러나고 반일(反日) 장사의 속살이 윤미향을 통해 공개됐다. 진보 페미니즘의 허망함이 박원순, 안희정, 오거돈으로 발가벗겨졌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다는 나라가 첫새벽 뒷골목에서 숨죽여 민주주의 만세를 다시 써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시점에 윤희숙의 5분 발언이 나왔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는 시도가 신선했다. 견고한 좌파 성채에 작은 구멍을 하나 뚫었다고 생각한다.
통합당은 법으로나 완력으로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입 하나로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8개월, 5700여 시간이 남았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라고들 한다. 방법은 없다. '윤희숙의 5분' 같은 강렬함으로 그 시간을 채우는 수밖에는 없다. '무슨 말을 해서 내 편으로 끌어올 건가' '어떻게 소통해야 혐오 이미지를 털어낼 수 있나' 통합당의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