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부부가 매일 밤 11시까지 화장품 장사로 모은 8억원을, 정부 말만 믿고 주택임대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사업자 신고도, 세금 납부도 모두 법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투기꾼'이라며 연 5000만원씩 종부세를 내라 합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구모(56·사진)씨·박모(59)씨 부부는 3일 서울 대림동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아내 구씨는 지난 1일 여의도에서 열렸던 부동산 증세(增稅) 반대 집회에서 '5분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구씨 부부는 시가 총액이 8억5000만원에 불과한 다세대·오피스텔 8칸을 가졌다는 이유로 내년부터 해마다 5000만원씩을 종합부동산세(이하 농어촌특별세 포함)로 내야 한다. 그것도 '공시가격 현실화'를 선언한 정부가 앞으로 공시가격을 더는 올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다. 정부가 법인 임대사업자를 '시장교란세력'으로 규정하고, 7·10 대책을 통해 법인 임대사업자에게 보유 주택 공시가격 총액 7.2%에 해당하는 종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구씨 부부를 주택임대사업자의 길로 끌어들인 것은 정부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017년 직접 "임대사업자에게 혜택을 준다"고 했다. 구씨는 "그 말을 믿었다가 지옥문이 열렸다"고 했다. 대출 없이 다세대 등 8칸을 샀지만, 이제 세금을 내려면 빚을 내야 한다. 집은 내놨지만 시장이 얼어붙어 팔리지 않는다.

3일 오후 서울 지하철 7호선 대림역 인근 빌라촌에서 구모(여·56)씨 부부가 주택가를 둘러보고 있다. 지난 1일 구씨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해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해 세금이란 이름으로 재산을 몰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부는 "우리는 누구의 몫을 빼앗거나, 남에게 사기를 치거나, 부동산으로 폭리를 취하려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정부는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구씨 부부에 따르면, 둘은 1988년 3월 결혼해 그해 8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보증금 200만원, 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꾸린 이들은 회사 대신 장사를 택했다. 남편이 퇴직금으로 봉고차 한 대를 뽑아 도매가로 떼어온 화장품을 서울 전역 소매품점에 되팔았고, 아내는 대림동에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

부부는 장사를 시작한 뒤 '오전 10시 출근, 오후 11시 퇴근'을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다. 구씨는 "명품백 사지 않고, 아이들 데리고 제대로 놀이동산 한 번 가지 않으며 근검절약해 돈을 모았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딸 셋을 낳았다. 그러나 다섯 식구가 다같이 여행을 간 건 딱 한 번. 10년 전 큰딸이 "우리도 가족여행 한번 가자"고 해 2박 3일로 경주에 다녀온 게 전부라고 한다.

구씨는 "자영업자 사는 게 다 그렇다. 자영업자는 자기 시간과 영혼을 돈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열심히 한 덕에 사업은 한때 번창해, 2005년엔 서울과 수도권에 매장을 11개까지 늘렸다. 화장품 회사가 요청한 판매 목표액 3배를 팔아, 화장품 회사가 보내준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박씨는 "살면서 해본 유일한 해외여행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내리막을 탔다. 분식점·휴대폰매장 등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 화장품 가게도 하나둘 문을 닫아 지금은 4개 남았고, 2개는 정리 중이다.

2018년 12월, 부부는 경매 공부를 시작했다. 정부가 각종 혜택을 주며 '임대사업자 등록'을 장려하던 때였다.

부부는 장사에 올인했듯, 다시 부동산 공부에 올인했다. 가게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온 자정부터 매일 2~3시간씩 유튜브를 보며 경매 공부를 시작했다. 주말에는 함께 경매 학원에 다녔다. 세제 혜택을 준다고 해 법인도 만들었다. 그렇게 쌓은 지식으로 한 채씩 사들인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이 총 8칸, 총 매입 가격은 8억5521만원. 대출 한 푼 끼지 않고 그동안 모아둔 돈만 모두 털어넣었다.

구씨 부부 소유 8채의 공시지가 합산액은 6억7660만원이다. 올해 예상 종부세액은 41만원. 그러나 정부가 7·10 대책을 내면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법인 상대 종부세율을 일괄 '6%'로 설정하고, 공제도 없앴다. 구씨가 내년 내야 할 종부세는 4871만원이 됐다.

구씨 부부가 가진 빌라·오피스텔 8칸 가운데 전세보증금을 제외한 순수 월세 수익 총합은 매월 232만원, 연간 2784만원 수준이다. 내년부터 세금을 내기에도 2087만원 부족하다. 정부가 계획 중인 '공시지가 현실화'는 감안하지 않은 액수다. 8칸 중 6칸을 매입 원가에 내놨지만, 찾는 사람은 아직 없다. 구씨는 "평생 뼈 빠지게 일하다가 늙어서라도 좀 편해 보겠다고 노후 대비용 빌라를 몇 채 샀는데, 정부가 재산을 강탈하려 들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