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黨政靑)이 이달 초 다(多)주택 고위 공직자들을 향해 "집 1채만 남기고 다 팔라"고 지시했지만, 한달여가 지난 현재 주택을 처분해 다주택 상태를 해소한 장관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에게 '다주택 해소'를 권고하는 정부 부동산 정책 기조와는 다른 행보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리 호소했지만… 장관 8명은 여전히 다주택 상태

정세균 국무총리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31일 본지가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의 다주택 보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장관 18명 중 오피스텔까지 포함하면 8명(44%)이 여전히 다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3채)을 비롯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이정옥 여성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이상 2채) 등 8명이다.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달 8일 고위 공직자들을 향해 "최근 부동산 문제로 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며 "고위 공직자들이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다면 어떠한 정책을 내놓아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다주택자의 경우 하루빨리 매각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었다. 4·15 총선 전후 고공 행진하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6·17 부동산 대책' 이후 50% 아래로 떨어졌고,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성난 민심이 표출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다주택 상태를 해소한 장관은 한명도 없었다.

◇다주택 장관들, 매물만 내놓고 "안 팔리네"

(사진 왼쪽부터) 강경화 외교부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추미애 법무부장관.


서울에만 3주택을 보유하고 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정총리 지시가 있은 후, 지난 16일 배우자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 명의의 종로구 오피스텔 지분을 매각했다. 이어 노모(老母)가 살고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다세대주택도 매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반면 같은 3주택자인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달 중순 "팔아야겠죠"라며 매각 의사를 밝혔지만, 거래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배우자 명의로 보유한 일본 아파트의 경우 해외 부동산인 만큼 3주택자로는 볼 수 없다는 게 중기부측 입장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실거주 아파트 외에 들고 있는 여의도 오피스텔을 임기가 끝나면 처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이정옥 여성부장관.

‘다주택 장관’들은 매각 의사는 밝혔고 매물로 내놨지만, 아직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주택자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달 9일 “1주택자가 아니라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는다”며 경기도 의왕 아파트를 내놓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팔리지 않은 상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과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도 각각 경기도 수원 오피스텔과 대전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기만 한 상태다.


이밖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서울 용산구에 2채를 보유하고 있다. 본인 명의 오피스텔과 부인 명의 아파트 분양권이다. 세계해사대학(IMU) 교수 출신인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스웨덴 말뫼와 부산 해운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청와대도 비서관급 이상 8명이 다주택 상태

앞서 노영민 비서실장이 "7월 안으로 1주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처분하라"며 다주택 매각을 지시한 청와대에서도 비서관급 이상 참모들 중 8명이 여전히 다주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31일 브리핑에서 "현재 비서관급 이상 참모 중 8명이 다주택을 보유 중이며,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처분 의사를 표명하고 처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청와대가 국민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내놓은 주택매각 권고가 오히려 보여주기식임이 드러남에 따라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며 "대통령은 지체없이 다주택 참모를 쫓아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