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사정권 시절 여당이 국회에서 법안을 날치기 처리할 때도 최소한의 토론 절차는 거쳤다. 법안 내용도 공개됐다. 그러다 막판에 강행 처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권이 집권한 한국에서 토론과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법안 내용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폭거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어제 국회 법사위에서 단독 처리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지만 단 이틀 만에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 소위원회 심사나 찬반 토론 한번 없었다. 여당은 법안 원안을 마음대로 수정하고선 야당에는 그 내용도 알려주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은 의사봉을 두드리기 직전에야 곧 통과될 법안을 볼 수 있었다. 담당 의원도 모르는 법안이 통과되는 일이 의회민주주의를 한다는 국가에서 어떻게 벌어지나.

민주당은 전날에도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더 지우는 11개 법안을 상임위에서 처리하면서 소위원회 구성 등 법안 심사 절차를 생략했다.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 삶에 영향이 큰 법안의 긍정·부정 측면을 다 살피라는 것이다. 그런 심의 절차를 모조리 생략하고 법안을 내던진 뒤 1시간여 만에 처리했다. 민주 절차가 거추장스럽다는 것이고, 이견(異見)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속도가 중요하다" "민주당이 국회를 온전히 책임진 지금이야말로 입법과 제도 개혁 최적기"라고 했다. 앞으로도 절차와 토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이 모두가 문재인 대통령이 재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당 국회의원 176명이 졸병처럼 줄을 선다.

민주당은 이날 공수처법 규칙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국회의장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를 지체없이 구성하고, 기한을 정해 교섭단체에 추천 위원 추천을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민주당에서는 야당이 추천 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야당 측 위원 없이 공수처장을 추천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자고 한다. 야당에 추천권을 준 것은 공수처 중립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공수처에 정당성이 있다면 그 기둥과 같다. 그 기둥을 뽑아버리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반민주적 행태는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일방 처리할 때 시작됐다. 그 폭거가 선거에서 심판을 받지 않고 오히려 대승을 하니 폭주 면허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 국회의장의 야당 의원 상임위 강제 배정, 추경 단독 처리, 장관 청문회 무시, 모든 법안 절차·토론 생략 등이 이어지고 있다. 못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외형은 민주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론 오직 권력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1당 국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