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조사국장은 한국경제의 분석과 전망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리이다. 그를 거친 경제 분석과 전망은 정부 정책 수립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투자 판단 기준이 된다. 그러나 조사국장은 공식 기자회견 외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한은 퇴직 후에도 대체로 그렇다.
기자가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주목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2015~2018년 조사국장 역임 후에도 조사국장 시절의 노하우를 살려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분석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갈까. 지난 2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6층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장 연구위원은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와 분리되어 과열되는 현상은 새로운 경제위기의 전조"라며 "예나 지금이나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유동성에만 의존한 자산가격 급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위기 극복 위해 푼 돈, 새 위기의 씨앗
―코로나 사태로 전세계 경제가 엉망이다. 한국 GDP(국내총생산) 성장률도 올해 1분기에 전 분기 대비 -1.4%, 2분기에 -3.3%를 각각 기록했다. -3.3%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분기(-6.8%) 이후 최저 성장률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3.28%)보다도 충격이 컸다. 올해 하반기 한국 경제는 어떨까.
"3분기와 4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플러스가 나올 수도 있다. 외국에서 봉쇄 조치를 풀면서 수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기별 성장이 플러스로 돌아선다고 하더라도 올해 상반기 성장률이 워낙 나빠서 내년인 2021년에도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의 경제규모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장 연구위원에게 코로나 사태로 인한 한국경제의 현안을 3가지 꼽아 달라고 하니 ①실물과 금융의 괴리 ②소득 양극화 확대 ③경제성장 잠재력 약화를 들었다. 그래서 하나씩 차례로 물었다.
―요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데 반해,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실물 경제는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금융 부문이 실물 부문과 분리되어 과열되면 새로운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 2000년 닷컴 버블(거품)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라. 모두 금융 부문이 실물 부분과 분리되어 과열 양상을 보이다가 위기가 폭발했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외화 차입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금융 버블 상황이었다. 요즘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돈을 빌려 주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폭탄이 응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자금)을 풀었지만 이 유동성이 새로운 경제위기의 씨가 되는 셈이다."
백신 나와도 예전 경제 수준 회복 쉽지 않아
―코로나 백신이 나오면 경제가 살아나지 않겠는가.
"초기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고 있다. 백신이 나와도 글로벌 공급망이 위축되고 세계 교역량이 축소된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음식점과 카페 같은 대면 서비스업자와 자영업자들이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경기 흐름이 급속한 회복을 의미하는 V자 보다는 U자나 L자 형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백신이 나와도 사람들이 당분간 해외여행을 안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자산시장에서는 버블이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정부 지출이 많아 추가 지출 여력도 적고, 금리도 0% 대여서 한은이 돈을 더 풀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금융 버블 상황이 이어진다면 경제 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실물 부문, 즉 기업을 무조건 살려야 한다. 그래야 여기서 실업자들을 흡수할 수 있다. 반면,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시중의 상승 기대를 변화시키는 조치를 해야 한다. 지금처럼 단기 대응책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중장기 정책 비전을 제시하면서 정책의 신뢰성을 얻어야 한다. 정책 신뢰성을 잃은 것이 문제다."
―금융버블을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다시 올릴 가능성은.
"실물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올리기가 쉽지 않다."
―한국이 이번에 처음으로 제로(0)금리 시대가 됐다. 어떤 변화가 올까.
"일본과 유럽은 정책금리가 연간 0% 대인 제로금리 시대를 이미 오래 전에 경험했다. 심지어 지금은 마이너스 금리이다. 미국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제로 금리를 경험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대격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은행에 안 넣고 대출을 받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입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이다."
서비스업ㆍ자영업자, 새로운 폭탄 가능성
―대면 서비스업과 자영업자가 경제 위기의 새로운 폭탄이 될 수 있나.
"그렇다. 음식ㆍ숙박업 같은 자영업이나 대면 서비스업은 근로자들이 갈 수 있는 마지막 일자리이다. 우리나라는 예컨대 식당이 80만개나 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이 부문이 타격을 받으면서 근로자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됐다. 원래 자영업은 경쟁이 치열하고 생산성이 낮은 부문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 그러니 정부가 기업 살리기 정책을 통해 이 인력의 일부를 흡수하고, 또한 노후 연금체계를 확대해 예컨대 퇴직금으로 은퇴 후 식당 차리는 생계형 자영업자를 줄여야 한다."
―연금 체계를 확대하려면 증세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조세저항이 심한데.
"세계적인 흐름에 비추어 보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복지 지출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세금 한푼 안내는 면세자를 줄이고 다수의 사람에게서 세금을 걷는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 기업의 기(氣)를 살리기 위해 법인세는 낮추고 개인 소득세는 올리며, 자영업자의 세원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동시에 지금은 위기 상황이므로 재정 건전성에 매달리기 보다는 과감한 재정투입을 하되 재정 씀씀이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재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하나.
"중장기적 시각에서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분야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예컨대 공립어린이집은 수요가 넘쳐난다. 그러니 이 부문을 확충해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가율을 높여야 한다. 디지털과 벤처 등에도 투입해야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도 단기적인 가격 억제책 보다는 중장기적인 공급책에 재정을 투입해야 효과적이다."
규제 개혁하고 노동시장 유연성도 높여야
―경제성장 잠재력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데 코로나 사태로 교역량은 줄어들고 투자도 감소했다. 이런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테니 경제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줄여 노동시장 유연성도 높여야 한다. 기득권 노조가 노동 개혁에 반대할 텐데 정부가 넘어서야 한다."
인터뷰를 마무리 지을 때 쯤 장 연구위원이 2004~2007년에 한국은행의 미국 워싱턴 사무소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재무부, IMF(국제통화기금)를 담당해 정책협의를 한 적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연준의 움직임에 대해 물어봤다.
―미국 연준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예측하나.
"예측하기 힘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연준이 그전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에도 2008년과 완전히 다르게 움직였다. 예전에는 중앙은행이 민간은행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뒤에서 '마지막 보루(last resort)'의 역할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앙은행이 투자부적격 등급의 회사채까지 직접 사주면서 민간은행처럼 행동했다. 금융시장의 '폭탄 제거반'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구나 예전에는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하고 정부가 재정정책을 했는데, 이번에는 중앙은행이 재정정책의 보조자가 됐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정말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