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새로운 디지털저널리즘 시리즈 ‘데이터숲’은 정치·사회·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를 심층 분석해 보도하는 코너입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정교하게 분석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주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올 1~6월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미래통합당’이었다. ‘미통당’을 포함해 총 851회 등장했다. 현 정부를 지칭하는 ‘남조선당국’(348회)보다 2배 가량 많았다. 북한 핵심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운영하는 대남선전 인터넷사이트는 2003년 개설 이후 줄곧 보수 정권을 비판해 왔다. “종처(썩은 부분)는 제때에 들어내고 독초는 뿌리채 뽑아버려야 후환이 없는것처럼 보수적페세력을 깨끗이 청산하여야”(5월 2일) 한다는 식이었다.

본지는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북한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 실린 대남선전 관련 기사 760건을 수집한 뒤 여기에 쓰인 단어를 분석했다. 분석에는 통계 프로그램 R을 사용했다.

그러나 삐라사태(6월4일) 이후로는 현 정부를 ‘적’으로 지칭하며 문 정부와 여당에 대해서도 비판하기 시작했다. “안팎이 다른 남조선당국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심이 더 불타오른다(…) 민족, 평화번영을 운운하며 평양과 백두산을 왔다가도 적은 역시 적” (6월 13일) 등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강경 행보를 보였다.

본지는 올해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우리민족끼리에 실린 대남선전 관련 기사 총 760건, 총 글자 수 약 75만 자를 수집한 뒤 여기에 쓰인 단어들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급변한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 행태를 살펴봤다.

그래픽=김현중

◇“남남갈등 유발 위해 야당 비난”

우리민족끼리는 미래통합당을 두고 “승냥이가 양울음소리를 내도 승냥이인것처럼 반역과 악정, 동족 대결과 부정부패에 쩌들대로 쩌든 보수패당”이라고 비난했다. ‘보수적폐세력’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망하는 집에 싸움이 잦다’는 속담을 들기도 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한국 사회에 남·남 갈등을 유발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북제재 해제 여론을 이끌기 위해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중

그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미국(760회)’이다. 우리민족끼리는 ‘한미관계’를 비난하며 미국을 언급했다. 매체는 5월 3일 “남북관계발전과 교류협력사업을 미국에 일일이 동의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대굴종적행태를 보여왔다”며 미국이 남한 정세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했다. 북한이 한미 관계를 이완시키고 반미 선동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한국이 외세에 불종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며 행동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우리민족끼리는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하지 않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언급도 없었다. 이는 우리민족끼리가 대남 선전·선동을 목적으로 한 매체인 데다, 북한이 미국과 협상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삐라사태 이후 “백두산 왔다가도 적은 적” 현 정부 비판

6월부터는 현 정부를 뜻하는 ‘남조선 당국’이라는 표현이 급증했다. 1월부터 5월까지 ‘남조선당국’을 언급한 횟수는 총 121번이다. 그러나 6월 한 달 동안은 227회나 언급했다. 이는 대부분 ‘삐라’ 사태와 관련한 태도를 비난하는 글에 사용됐다.

그래픽=김현중

북한은 탈북자들의 삐라 살포를 두고 “남조선당국이 묵인”했다며 현 정부와 여당을 비난했다. 때로는 ‘적’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보수당을 비난하는 수준보다 더 강하게 비판했다. 6월 11일에는 “현 당국은 이라는 간판을 내달고 그 뒤에서 더 교묘한 방식을 펴온 것”이라며 현 정부가 양면적 행태를 보였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공식 비방은 안 해… “대화 여지 남겨둔 것”

우리민족끼리는 문재인 대통령만큼은 직접적으로 비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진보 매체 글을 그대로 인용할 때 ‘문재인 정부’라고 표현했을 뿐, 문 대통령을 비판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남조선 당국을 분리하여 ‘여지’를 남겨둔 것” 이라고 말했다.

북한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미국과 한국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트럼프 미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다. 향후 협상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작년 6월30일 판문점 회동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다만, 댓글에서 문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표현한 적은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 우리민족끼리는 독자감상글 코너 댓글에서 “문재인이 굴러들어온 평화번영의 복도 차버린 것은 여느 대통령들보다 훨씬 모자란 멍청이인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라고 했다.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매체들의 독자감상글은 관리자만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민족끼리 측이 직접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관계개선 핵심 ‘핵’ 언급은 없어

우리민족끼리는 ‘핵’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경우는 삐라 사태 때뿐이다. 6월 4일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며 를 걸고 푼수없이 놀아대는” 정도로 표현한 게 전부였다. 북한이 핵 협상의 경우 대화 상대가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핵보유와 관련해서 남한 사회에 동조, 우호, 지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전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최대 딜레마이면서 약점인 핵문제를 언급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라며 “언급할 수록 핵 포기 여론이 등장하기 때문에 대외 선전 목적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