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7일 전격 공개한 문서인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두고 야당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각종 남북 경협과 이에 따른 대북 현물·현금 지원이 대가성으로 미리 약정됐다는 것이 증명된 것으로 의혹이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측이 북측에 현금 4억5000만달러와 현물 5000만달러 등 총 5억달러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노무현 정부 시절 '김대중 정부 대북 송금 특검' 수사와 판결로 확인된 사안이다. 이번 문건은 여기에 더해 25억달러의 대규모 남북 경협이 정상회담 이후의 '성과'가 아닌, 남북 정상이 만나기 위한 '사전 조건'으로 미리 약정돼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것이 야당 측 주장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에서 만나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각 분야 협력 교류에 전격 합의했다.

주호영 "박지원, 北과 이면합의"… 회담 당시 北송호경과 악수하는 박지원 -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현물·현금 약속이 담긴 '2000년도 (남북) 경제협력에 관련 합의서'를 들어 보이며 여기에 박 후보자의 친필 서명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지난 2000년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송호경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 이후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통합당은 "정상적인 대북 지원이었다면 정상회담 때 합의해 공개 안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통합당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인사청문회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나 "박 후보자가 '아시아개발은행, 민간사업자 등의 투자 자금으로 20억~30억달러 대북 투자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원론적인 얘기를 했었다'고 전했다"며 "즉, 합의문의 내용은 (남북이) 언급했지만, 실제 합의문을 작성하거나 서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박 후보자의 답변"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북한의 20억달러 현금 지원 요구는 거절했지만, 정상회담 이후 남북 협력이 이루어지면 아시아개발은행(ADB)·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을 통해 20억~30억달러 투자는 금방 들어온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공개된 '경협 합의서'에는 '인도적 지원' 5억달러 외에 "남측은 민족적 협력과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달러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 차관을 사회간접 부문에 제공한다"고 돼 있다. 실제 2000년 초 남북 당국자들의 정상회담 접촉 과정에서부터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얘기가 오갔다. 대북 송금 판결문에 따르면, 2000년 3월 17~18일 중국 상하이에서 진행된 1차 접촉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 응하면 쌀, 비료 등과 같은 인도적 지원 외에도 향후 20억~30억달러에 상당하는 SOC 지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북측에 제안했다. 결국 4월 8일 베이징 3차 접촉에서 양측은 5억달러 현금 지원에 전격 합의, 6월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정상회담 직후부터 남북은 일사천리로 경협 사업을 진행해갔다. 우리 정부는 2000년 12월 북한과 상호 간 투자자 및 투자 자산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는 내용의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등 4건의 합의서를 체결했다. 현대그룹도 북측과 금강산, 통천, 원산지구 개발과 철도, 통신, 전력, 문화, 체육 등 분야 경협 합의서를 속속 체결했다.

국회 등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때 남북 교역에 4억5000만달러, 금강산 등 관광에 4억1000만달러 등 현금이 약 9억달러 지원됐다. 또 비료 등 무상 지원 4억6000만달러, 식량 차관 2억5000만달러, 관광 투자 3억3000만달러 등 11억달러가량이 현물로 지원됐다. 여기에 5억달러가량의 대북 송금을 합치면 약 25억달러가 지원됐다. 북한은 이 돈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송금 사건은 2002년 9월 국회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회장)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다. 4억5000만달러가 현대를 통해 북한에 지원되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인 산은이 정부의 지시를 받고 4000억원을 현대상선에 빌려줬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엄 전 총재는 특히 회고록에서 김대중 정부가 현대에 이어 S그룹에도 대북 사업 참여를 압박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