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헌릉로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8·15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차량 행렬이 이 전 의원의 얼굴 조형물이 걸려있는 육교 밑을 지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9년이 확정돼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사면(赦免)하라고 주장하는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 피해자 구명위원회' 등 시위대가 최근 종로·송파 등 서울 6개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저속 행진을 통해 교통을 방해해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7시 20분쯤 서울 서초구 헌릉로에 돌연 교통 정체가 벌어졌다. 왕복 10개 차로 가운데 양방향 2개 차로씩을 파란 깃발을 단 차량 행렬이 차지한 채 경적을 울리며 시속 10~20㎞로 집단 서행하고, 일반 차량들이 이를 피해 나머지 6개 차로로 몰리면서 나타난 정체였다. 파란 깃발의 차량 수백 대에는 구호도 적혀 있었다. '종복물이 피해자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내란음모 무죄인데 9년형이 웬말이냐' 등. 사람을 바구니에 탑승시켜 위로 올리는 크레인 차도 5대 이상 동원됐다. 크레인 차 위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이석기 석방' 깃발을 흔들었다. 이런 차량들이 1시간에 걸쳐 염곡IC~세곡동사거리 구간을 오가며 시위를 벌였다. 주최 측은 "2500여 대가 참가했다"고 했다.

25일 이 전 의원 지지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차량을 동원해 이 전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차량행진을 벌였다.




도로 바깥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도로 양쪽 가로수, 육교 등에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의 8·15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현수막 수십 개가 내걸렸다. 육교 위에 돗자리를 편 시위대는 음악을 틀고 피켓을 흔들며 차량 행진을 응원했다.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 피해자 구명위원회'라는 단체가 기획한 시위였다.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도로교통법도 복수(複數) 차량이 도로에서 좌우로 줄지어 통행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끼치거나 교통상의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서울경찰은 "정상적으로 '차량시위'로 신고한 집회에서 완전히 정차·점거한 게 아니라 서행한 것이기 때문에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한 경찰 관계자는 "신고제인 집회를 막긴 어렵지만, 고소나 고발이 들어온다면 수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민폐성 시위에 일반 운전자와 주민들은 분노했다. 이날 행진 구간에서 운전한 박모(47)씨는 "오는 길이 무법천지인 줄 알았다"며 "주말 저녁에 자기들 마음대로 경적을 울리고 차량 통행을 방해해도 되는 것이냐"고 했다. 세곡동 주민 정모(37)씨는 "귀갓길 유턴 신호 한 번 받는 데 15분 넘게 기다렸다"고 했다. 일부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시위대 측과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주변 상인도 피해를 봤다. 대로변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최모(44)씨는 "보통 주말 오후 손님이 30~40명 정도 되는데 시위 때문에 오늘은 한 명도 없다"며 "시위대 십수 명이 가게 화장실을 쓰겠다고 여러 차례 들렀는데, 장사에 방해가 컸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의 옥중(獄中) 서신도 이날 구명위 페이스북에 공개됐다. 그는 "남북 관계가 어려운 것은 미국을 무서워하고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다. 미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평화도, 번영도 모두 말장난에 그칠 뿐"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은 세 차례의 전국 선거를 통해 낡은 세력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며 “이렇게 낡은 세력이 패퇴하면서 생겨난 공간은 진보 세력에 커다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옛 통진당 세력이 주축이 된 민중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1.05%를 기록해 원내 진입에 실패한 뒤 최근 이름을 진보당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