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통령이 된다면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참아야죠"라고 대답한 장면.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풍자 대자보를 대학 캠퍼스에 붙였다가 건조물침입죄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김모(25)씨가 지난 22일 법원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본지가 입수한 항소이유서에서 김씨는 “젊은 청년을 전과자로 만들어 다시는 대자보를 붙이지 못하게 협박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 “청와대 인사들과 여당 의원들이 과거 운동권 시절 붙인 대자보만 민주화운동이고 표현의 자유인가” 라고 했다.

작년 11월 김씨가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붙인 문재인 대통령 비판 대자보.

앞서 김씨는 작년 11월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생회관과 체육관 등 5곳에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이 인쇄된 대자보에는 “나(시진핑)의 충견 문재앙이 공수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통과시켜 완벽한 중국 식민지가 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칠 것”이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씨는 이인영·임종석 등 현 여권 핵심인사들이 의장을 맡았던 1980년대 대학생 운동권 단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이름을 딴 ‘신(新) 전대협’에 소속돼 풍자 대자보를 붙이는 등 정부 비판 활동을 해왔다.

대자보 게재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은 단국대 측의 신고도 없이 김씨를 건조물 침입 혐의로 조사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김씨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이에 김씨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지만 지난달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 홍성욱 판사는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무단침입 혐의를 덧씌운 기소에, 법원이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고, 미래통합당과 정의당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취지의 논평을 내는 등 논란이 일었다.

김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30일 항소했고, 지난 22일 항소이유서를 대전지법에 제출했다.

◇ “대자보 내용을 문제 삼은 경찰의 무리한 수사는 표현의 자유 억압”

이 사건을 최초 수사했던 충남 천안동남경찰서는 김씨에 대해 ‘건조물 침입죄’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정상적인 학교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가지고 무단으로 들어갔다면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여러 정황을 감안해 적용법을 검토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 측은 조사 과정과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을 볼 때, 경찰이 대자보를 소지하게 된 경위와 붙인 이유, 대자보의 내용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고 했다. 경찰이 캠퍼스에 들어간 행위 자체보다는 대통령을 비판한 대자보 내용을 문제 삼아 수사한 것이라는 것이다.

김씨 측은 경찰이 과잉 수사를 통해 억지로 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한 것을 검찰이 그대로 받아들여 재판에 넘긴 것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유죄가 아닌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어야 한다는 게 김씨 측 입장이다.

김씨 측은 “이 사건은 현 정부를 대자보의 형식을 빌려 비판, 풍자하는 젊은 청년들을 전과자로 만들어 다시는 대자보를 붙이지 못하게 협박하는 것이며, 정권에 대한 수사기관의 눈치보기, 과잉수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文대통령 후보 시절 발언과도 배치… “당선 뒤 입장 달라졌나”

경찰 수사가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출연한 방송에서 했던 말과 정면으로 배치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17년 JTBC 썰전에 출연해 진행자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느냐”고 하자 “참아야죠 뭐. 국민들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라고 대답했다. 또 진행자가 “어떤 비난에도 청와대는 절대 고소, 고발하지 않는다고 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그렇게 권력자를 비판함으로써 국민들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씨 측은 “문 대통령의 입장이 후보일 때와 당선 뒤 달라진 건지, 경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건지, 청와대가 잡아다가 수사하고 처벌하라고 하명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 피해자로 지목된 단국대는 “괜찮다. 처벌 말라”는데...경찰은 “가택칩임이네요?” 혐의 유도

김씨 측은 항소이유서를 통해 단국대 측이 학내 대자보 게재 행위에 대해 건조물침입죄로 문제 삼지 않았고, 김씨의 처벌을 원치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건조물침입죄는 건물 관리자의 의사에 반(反)해 건물에 들어가야 죄가 된다. 지난 5월 21일 재판 증인으로 나왔던 단국대 천안캠퍼스 관계자는 ① 아무런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다 ② 자신이 피해자로 지목된 줄도 몰랐다 ③ 신고한 사실이 없다 ④ 처벌의사 없다 ⑤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데 피고인이 대자보를 붙였다고 해서 수사받고 재판받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김씨 측은 항소이유서에서 또 다른 단국대 직원들이 언론과 통화한 내용도 제시했다. 한 단국대 직원은 언론에 “학교 측이 대자보를 붙인 사람을 처벌해달라는 의사를 표시한 것은 전혀 없었다”며 “학교에 출입하는 사람, 시간, 방법 등에 관해 학교 내 규정은 있지만 법은 아니고, 외부인이라도 밤중에 들어올 수도 있다” “새벽에 들어와 종이를 붙이고 간 것에 대해 형사처분을 원치 않는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대학 관계자는 “수사의뢰를 한 적이 없고 단순히 대자보 붙은 사실을 알려줬는데 오히려 경찰들이 ‘가택침입이네요?’라는 식으로 유도를 했다”고 말했다고 김씨 측은 밝혔다 경찰이 김씨에게 건조물침입 혐의를 씌우기 위해 단국대 측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학생들이 허가받지 않은 대자보를 가끔 붙여도 함부로 떼지 않는다”며 “경찰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 “청와대 인사·민주당 의원들이 과거 붙였던 대자보만 표현의 자유, 민주화 운동이냐”

김씨 측은 대자보 게시를 위한 대학 출입 행위가 과거로부터 광범위하게 통용돼 오던 정치적 의사표현의 한 방식이고 처벌하지 않던 것이 관례라고 주장했다.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가 전대협 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

김씨 측은 “대학 내 대자보 게시는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학생들이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해왔던 행위”라며 “대자보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지 않기 위해 익명으로 은밀하게 기습적으로 부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즉 김씨의 대자보 게재 행위가 형법 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에 포함돼 위법성이 없다는 것이다.

김씨 측은 “현 정부 청와대 인사들,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 다수가 과거 전대협 활동을 하면서 했던 일이 매일 대학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였던 일”이라며 “그들에게 과거 자신들이 대자보 붙인 것은 표현의 자유, 민주화 운동이고 현재 2020년 대한민국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것은 건조물침입죄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