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올 1월 국회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세부 내용을 담은 관련 시행령 초안(草案)을 최근 마련했다. 초안에는 검사의 수사 범위를 4급 이상 공직자로 대폭 제한하고, 중대 사건의 경우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수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 안팎에선 "권력 비리 의혹 수사 등 반부패 수사 기능을 약화시키고 수사 독립성을 훼손하는 개악(改惡)"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주 법무부 등 관계기관에 검찰청법 개정안 시행령 잠정안을 보냈다. 잠정안에는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를 ▲4급 이상 공직자 ▲3000만원 이상 뇌물 사건 ▲마약 밀수 범죄 등으로 제한했다. 이 범위 밖의 5급 이하 공직자 범죄, 3000만원 미만 뇌물죄, 마약 소지죄 등은 경찰이 수사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다음 달 3급 이상 고위공직자를 수사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면 검찰의 수사 범위는 더 좁아진다. 잠정안대로 시행될 경우 사실상 3급 이상 공직자는 공수처, 5급 이하는 경찰이 수사를 맡고 검찰은 4급 공무원을 대상으로만 수사할 수 있게 된다. 법조계 인사들은 "현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노골적 검찰 옥죄기"라고 했다.
특히 시행령에 '검찰이 수사할 대상'으로 적혀 있지 않은 사건 중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려 할 때에는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허영 경희대 법대 석좌교수는 "사실상 법무부 장관이 수사 총책임자로 나서겠다는 것, 정권이 원하는 수사만 하고 원치 않는 수사는 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했다. 한 전직 검찰총장도 "검찰의 핵심인 '정치적 중립성'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내용"이라며 "그야말로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드는 꼴"이라고 했다.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반부패 수사 기능을 사장(死藏)시키려는 시도"라며 "권력 비리에 대한 수사 기능이 사실상 없어지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공수처법 통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이 수장을 맡는 공수처는 검찰 수사 내용을 사전 보고받고, 사건 이첩도 요구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이 같은 청와대의 시행령 초안은 '검찰 통제의 완성'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법조계 인사들은 "청와대의 잠정안이 상위법인 검찰청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김종민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은 이날 "이번 시행령안은 외국에도 없는 제도"라며 "상위법인 검찰청법 규정 근거 없이 검찰 수사를 제한하는 것도 위법하다"고 했다. 지난 2월 개정된 검찰청법 4조(검사의 직무)는 검찰의 수사 범위에 대해 '부패 범죄, 경제 범죄,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방위사업 범죄, 대형 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등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수사 대상이나 직급에는 별도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검경 모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권 비리 등 대형 사건 수사를 하기 위해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수사 개시부터 장관이 개입하면 수사의 독립성·밀행성을 지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은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월 공포됐다. 이르면 오는 8월 5일부터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