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관노(官奴)와 동침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이후 논란을 빚었던 한 네티즌의 주장에 대해 덕수이씨 대종회와 충무공파 종회가 '허위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21일 오후 2시 국회 소통관에서 "관노 관련 글은 조작된 가짜 글이며,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선조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영화 '명량'(2014)에서 최민식이 분한 이순신.

'난중일기'를 완역한 이순신 전문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20일 본지 인터뷰에서 "'난중일기'를 비롯해 현존 어느 기록에도 이순신 장군이 노비나 기생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이순신 장군과 관계를 가진 여성은 처 상주 방씨, 후처 해주 오씨, 첩 부안댁 윤씨 등 처첩(妻妾) 3명뿐이라는 것이다.

'난중일기'에서 '관노'가 나오는 부분은 1597년 4월 21일의 기록이다. '저녁에 여산 관노의 집에서 잤다(夕宿于礪山官奴家)'고 했을 뿐 '관노와 잠자리를 함께했다'고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노비'의 '노(奴)'는 남자 종, '비(婢)'는 여자 종을 뜻하기 때문에 이 '관노'는 남성이다. 노 소장은 "당시 이순신 장군은 파직과 모친상을 당한 뒤 백의종군하러 가는 참담한 상황이었는데 여인과 잠자리를 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난중일기' 1596년 3월 9일에 여자 종으로 보이는 '개(介)'와 함께했다(공·共)는 것도 동침했다는 의미로 볼 수 없다. 노 소장은 "공(共)이란 글자를 쓴 용례가 '난중일기'에 모두 72번 나오는데, 평소 일상적인 만남을 의미하는 관용적인 표기일 뿐 잠자리의 의미가 아니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1596년 6월 24일에는 '경상수사(원균)도 와서 함께했다(慶尙水使亦來共)'고 기록했다. 만약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의미라면 '가까이하다'는 의미로 '근(近)'자를 썼을 것이라고 노 소장은 설명했다.

1596년 9월 14일과 15일에 보이는 '여진(女眞)'이란 이름은 김훈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과 관계를 맺는 여인으로 묘사돼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김훈은 본지 통화에서 "'난중일기' 해당 부분을 보고 여진이 사대부 여인은 아닌 것으로 보았다"며 "천한 신분의 여성으로 설정해 도입부에 등장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난중일기'의 이 부분은 '여진과 함께했다(공·共)'는 짤막한 기록일 뿐이다.

1596년 9월 11일엔 내산월이라는 관기(官妓)를 만났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고 했을 뿐이다. 이순신과 동시대 인물이었던 이항복은 "이순신이 군영에 있었던 7년 동안 몸과 마음이 곤고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한문학)는 "어느 기록도 이순신이 관비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며 "이순신 장군은 꿈속에서 미인의 유혹을 뿌리쳤다는 것까지 일기에 기록한 인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