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전직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되기 한 달 전쯤 서울시 간부들과 함께 '피해자 중심주의 사건 처리'라는 주제로 성인지(性認知)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야당에선 박 전 시장과 서울시 간부들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교육까지 받아놓고, 실제 처신과 대응은 달랐던 셈이라고 했다.

성인지 감수성 교육 참석해 토론하는 박원순 시장 - 박원순(테이블 왼쪽) 전 서울시장이 지난달 9일 서울시청 다목적 홀에서 열린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교육에 참석해 서울시 간부들과 토론하고 있다.

서울시청이 미래통합당 황보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박 전 시장과 서울시 실장·본부장·국장급 간부 44명은 지난달 9일 서울시 청사에서 성인지 교육을 받았다. '서울시 관리자급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을 예방하고 성인지 감수성 향상에 나선다'는 취지였다. 주요 교육 내용은 '성인지 감수성 관점에서 본 피해자 중심주의 사건 처리' '젠더 기반 폭력 예방을 위한 방법' 등이었다. 외부 강사 주도로 서울시 간부들은 5~6명씩 조(組)를 짜서 토론도 했다. 당시 박 전 시장은 '1조'에 편성돼 토론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간부들은 이 같은 성인지 교육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며 사후 평가에서 4.52점(5점 만점)을 줬다.

하지만 이 교육이 있은 지 한 달 뒤인 지난 8일 박 전 시장의 전직 비서 A씨는 "박 전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면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바로 다음 날 박 전 시장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황보 의원은 "서울시 간부들은 박 전 시장이 피소된 직후 대책 회의까지 열면서 '피해자 중심주의 사건 처리'와는 동떨어진 행태를 보였다"고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서울시청 간부들은 지난달 9일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받으면서 해당 강의에 대한 교육 효과와 서울시의 성인지 조직 문화를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박 전 시장은 전직 비서 A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했고, 서울시 간부들은 피해자를 오히려 회유·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권도 진영 논리를 앞세워 감싸려는 태도를 보였다.

박 전 시장과 서울시 간부들은 성인지 교육 직후 한 설문조사에서 '강의 만족도'에 4.52점(5점 만점), '교육 효과성'에 4.3점을 매겼다. 교육 효과성 부문과 관련해 소속 부서가 성희롱에서 안전한지를 나타내는 '조직문화' 항목에는 4.02점, 교육 필요성 항목에는 4.58점을 줬다. 당시 서울시 간부들은 "현장 사례 중심으로 조치 방안과 관리자 역할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관리자가 실수하기 쉬운 성폭력 사례를 쉽게 설명해 줄 것을 추가 요청한다"는 의견도 냈다.

그러나 전직 비서 A씨 측은 "서울시 간부들이 박 전 시장 피소 사실이 알려진 후 A씨에 대한 회유·협박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A씨를 대변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6일 "고소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전·현직 고위 공무원, 별정직, 비서관 중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이들이 있다"며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 단체에 휩쓸리지 말라'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거야' 등의 말로 압박했다"고 밝혔다. 황보승희 의원은 "같은 편이 저질렀다고 해서 성폭력이 '착한 성폭력'으로 바뀔 순 없다"고 했다. 경찰은 서울시가 방조·묵인했는지에 대해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