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 8일 성추행 문제 보고를 받고 다음 날인 9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이틀간 서울시는 내부적으로 대책회의를 여는 등 사안을 무마하기 위해 긴급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피해자 A씨에게는 "기자회견을 하지 말라"며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시장이 성추행 관련 보고를 처음으로 받은 것은 8일 오후 3시다. 임순영 젠더특보가 시장 집무실을 찾아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 했다. A씨가 고소하기 1시간 30분 전이다. 일부에서는 임 특보가 과거 근무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A씨를 보호하게 되면서 임 특보 지인을 통해 정보가 흘러나갔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A씨 측 김재련 변호사는 17일 "여성단체를 만난 것은 9일 오전"이라고 밝혔다. 임 특보가 알게 된 경로가 시 내부나 당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A씨는 김 변호사와 함께 8일 오후 4시 30분 경찰을 찾아가 9일 오전 2시 30분까지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그사이 박 전 시장은 8일 오후 9시 30분쯤부터 임 특보, 현직 변호사인 기획비서관, 다른 비서관과 함께 대책회의를 했다.

피해자가 조사를 마친 9일 오전 상황은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조사 종료 4시간 후인 오전 6시 30분쯤 고한석 전 비서실장은 임 특보로부터 성추행 문제에 대해 보고받았다. 고 전 비서실장은 오전 9시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시장 공관에서 박 전 시장을 만났다. 일부 언론은 이때 박 전 시장이 "직원과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문제가 생겼다"며 초조해했다고 보도했다. 고 전 실장은 오전 10시 10분 공관을 나섰으며, 34분 후인 오전 10시 44분 박 전 시장이 공관을 나오는 모습이 방범카메라에 포착됐다. 고 전 실장은 오후 1시 39분 박 시장과 통화하며 "산에서 내려오시라"고 했다. 이 무렵 시에서는 정무라인을 중심으로 별도 대책회의를 열고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시는 대응책 마련과 동시에 사안 무마를 위해 A씨에게 회유를 시도했다. A씨를 보호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6일 "고소 사실이 알려진 후에 전·현직 고위 공무원, 별정직, 비서관 중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이들이 있다"며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거야' 등의 말로 압박했다고 밝혔다. 또 박 전 시장의 장례식날인 지난 13일에는 송다영 여성가족정책실장이 김 변호사에게 기자회견 연기를 요청하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다. 임 특보는 지난 16일 사표를 제출했다. 시 관계자는 "유출 경위 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대기 발령을 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