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의 3.7%씩 부과해 조성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이하 전력기금)이 2029년엔 1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국책 연구기관 전망이 나왔다. 기금을 과다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가 이 돈을 탈(脫)원전 정책 손실 비용 보상, 대통령 공약 사항인 한전공대 설립 등에 사용하기로 하면서 전력기금이 정부 '쌈짓돈'처럼 쓰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용 목적을 명확히 하고 전력기금 요율을 낮춰 국민과 기업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16일 미래통합당 한무경 의원이 한국전력(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에너지경제연구원(에경연)의 '지속가능한 전력기반조성사업 운용을 위한 방안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4조4714억원이었던 전력기금은, 현재 기금 운용 규모를 감안할 때 올해 5조1176억원, 2025년 7조3376억원, 2029년 10조3398억원에 이르게 된다. 현재 기금 운용 규모를 감안한 추정치이지만 10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나는 것이다. 기금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건 전기요금을 통해 거둬들이는 돈이 매년 신재생에너지 지원, 전력 공급 기술 개발 등에 투입되는 사업비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15년째 꿈쩍 않는 3.7% 요율
2001년 설치된 전력기금은 당시 정부가 한전의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한전이 기존에 담당하던 전력 산업 발전, 도서·벽지 전력 공급 지원 등 각종 공적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기금이다. 전기를 쓰는 모든 국민이 부담하는 '준조세'다. 징수는 한전이 맡지만, 실제 기금을 운용하는 주체는 산업통상자원부다. 2005년 12월 4.6%에서 3.7%로 요율을 낮춘 이후 15년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기금이 계속 불어나자 국회는 물론 행정부 내에서도 요율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작년 9월 감사보고서에서 "산업부는 전력기금 여유 재원이 과다하게 누적돼 있고 향후 누적액 또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부담금 부과 요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산업부 장관은 전력기금의 부담금 요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은 전력기금 요율을 0.2%포인트 낮출 경우, 국민의 납부 부담이 1183억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기획재정부도 앞서 2017년 "안정적 수입 기반(법정부담금)을 확보하고 있어 재원 조성 방법은 적정하지만 중기 가용자산 규모가 과다하다"며 산업부에 전력기금 요율 인하 검토를 권고했다.
전력기금은 원가 절감이 숙명인 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3월 중소 제조업 300곳을 대상으로 '에너지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정책'을 묻는 말에 응답자의 17.7%가 '전력기금 면제'를 꼽았다. 중기중앙회는 "현재 창업 제조업에 한해 면제해주고 있는 전력기금을 한시적으로 중소 제조업 전체로 확대해 부담을 경감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주무 부처인 산업부 관계자는 "(요율 조정 등을 포함해) 전력기금 운용에 대해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경연도 "공익성 기준 불명확"
정부는 그간 공적 사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곳으로 전력기금 사용처를 늘리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지원에 사용하고 한전공대 설립에도 활용을 검토 중이다. 최근엔 탈원전 정책으로 발생한 원전 사업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매몰 비용을 전력기금으로 메워주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 공약으로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가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에 따른 손실을 국민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에경연도 보고서에서 전력기금의 '공익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에경연은 "주요 선진국은 기금 목적인 공익성의 핵심으로 환경·형평성을 제시하고 부과금을 활용한 사업 프로그램도 이에 맞게 한정적이고 구체적이지만, 우리나라 전력기금은 공익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방향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전기사업법의 전력기금 용도 가운데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력산업과 관련한 중요 사업'이란 규정이 있는데, 이는 정부 결정에 따라 전력 산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라면 언제든 추가될 수 있을 정도로 탄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시행령만 고치면 전력기금 사용처를 국회 동의 없이 정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전력기금이 과다하게 쌓인 만큼 요율을 낮춰 국민 부담을 줄이든지, 공적 사업 규모를 늘려 적절한 곳에 지출하든지, 개선이 필요하다"며 "재원을 꽉 쥔 채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져다 쓰는 건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