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아무도 몰래 나 홀로 떠났다." 1998년 4월에 출간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의 조선일보 서평 기사의 첫 문장이다. 그때 우리는 IMF 외환위기로 참혹한 봄을 맞고 있었다. 당시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서평으로 절망에 갇혀 있던 많은 이가 명성과 부를 버리고 궁정을 빠져나와 로마로 떠난 37세의 괴테에게 공감했다. 책은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서평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8년 3월부터 방영해 57.3%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한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서 은주(김지수)는 바로 이 조선일보 서평을 보고 오려둔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사서 읽던 은주는 결혼 상대인 기정(정보석)에게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에 가자고 조른다. 당시 푸른숲 주간으로 이 책을 기획한 나는 600쪽이 넘는 인문서가 종합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참혹했던 IMF 시절을 넘기는 최고의 책이 될 줄은 꿈에도 그리지 못했다.
2015년 6월 휴머니스트에서 출간한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조선일보 서평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혼 하나만 가져와라, 내가 '메마른 심장' 적셔줄 테니." 당시 중동발 메르스가 한국 사회를 불안에 떨게 했다. 이 서평은 기사 그대로 "메마른 심장들의 피를 다시 뛰게" 하였다. 서평은 한 편의 시가 되어 독자들의 잃어버린 감성을 되살렸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그해 가을 KBS의 'TV, 책을 보다'에 방영되었고 메르스의 종식과 함께 종합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18년에는 tvN에서 같은 타이틀의 드라마를 방영했고, 2019년 12월 개관한 전주시립도서관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시(詩) 전용 도서관을 중앙에 배치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고유명사는 잃어버린 청춘과 낭만을 되살리는 이 시대의 보통명사로 진화했다.
나는 1991년 출판에 입문하여 새길과 푸른숲 주간을 거쳐 2001년 휴머니스트를 창업했다. 지난 29년 동안 1600여 종의 책을 펴내며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듯 한 줄의 서평은 한 명의 잃어버린 감성을 일깨우며 한 사회의 문화를 이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만이 아니라 '대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등 내가 펴낸 수많은 베스트셀러 스토리는 모두 한 줄의 감동적인 서평에서 시작했다. 내가 29년 동안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어 다섯 개 신문을 집고 나서 조선일보의 문화면을 가장 먼저 펼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