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다주택 보유를 향한 거센 비판에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다주택 보유자는 매각하라”는 지시했지만 일부 고위 공직자들은 이를 뭉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주요 고위 공직자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에만 3채를 보유한 다주택자인데도 별다른 해명 없이 ‘무응답 전술’로 버티고 있다. 그는 정부의 ‘부동산 지침’을 이행할지 여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정 총리가 지난 8일 다주택 고위공무원의 주택 매각을 지시한 당일 서둘러 아파트를 급매한 은성수 금융위원장 등 다른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과는 사뭇 다르다.

최신 관보 자료에 따르면, 강 장관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단독주택, 관악구 봉천동 다세대주택, 종로구 운니동 오피스텔 등 3채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17년 장관 임명 이후 줄곧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 거주하고 있다.

[어색한 만남]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 화상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다주택 보유 논란에 대한 강 장관과 외교부의 해명 태도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등 다른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이 부처 대변인 등을 통해 적극 해명하는 것과 대비된다.

14일 외교부 브리핑에선 강 장관의 다주택 보유 문제와 관련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계속 답을 피했다. 이 당국자는 ‘장관 다주택 처분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확인해드릴 사항이 없다”고 했다. ‘잘 모른다는 말이냐’는 질문에도 “확인해드릴 사항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총리 말씀이 있어서 전 행정 부처가 동일하게 움직여야겠죠”라고 했다. 직속 상관에 대한 사안인데도 마치 ‘남일’ 얘기하듯 대응한 것이다.

이에 한 기자가 “그러면 (강 장관의 다주택 처분 관련) 움직임이 있다는 말씀이냐”고 질문했다. 하지만 이 당국자는 다시 “특별히 말씀드릴 사항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며칠 전에도 같은 질문에 “확인해드릴 것이 없다”는 대답을 되풀이했다.

외교 소식통은 “강 장관에게 그의 보좌진들이 다주택 문제를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는 것으로 안다”며 “특히 8월 정기 인사를 앞두고 있어 외교부 당국자들이 인사권자인 강 장관의 눈치를 보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강 장관이 동료 다주택 고위 공직자들의 동향을 살피느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2주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반포 아파트보다 청주 아파트를 먼저 처분해 ‘강남 불패’ 논란에 불을 질렀다. 청와대에서 주택 정책을 담당하는 윤성원 국토교통비서관은 지난 12일 보유한 2채 중 서울 잠원동 아파트는 놔둔 채 세종 아파트를 팔았다.

이런 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국회의원, 장·차관, 광역자치단체장, 시·도 교육감 등 1급 이상 다주택 공직자의 거주 목적 외 주택을 일정 기한 내 처분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