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이든 서양이든 위대한 영웅의 탄생에는 공통 스토리가 있다. 지독하게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나면 결국 훌륭한 인물이 된다는 것이 주제다. 구약에 이스라엘 출신으로 이집트 재상 자리에 오른 요셉이 대표적이다.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로 구덩이에 갇히고 이집트에 끌려갔지만 그는 총리까지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운 겨울을 인내로 견딘다는 인동초(忍冬草) 대통령도 있었다.

이 같은 스토리는 환자 행동에도 적용된다. 특히 고혈압 당뇨병 환자에서 이런 행동이 주로 나타난다. 패턴은 앞서 말한 영웅 탄생 경로와 비슷하다. 환자는 우선 약 처방을 거부하고 버텨보겠다고 말한다(고난의 선택). 물론 단순히 버티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식이요법과 운동을 열심히 한다(인고의 세월). 그 결과 질병의 진행이 늦춰지거나 정상화된다(성공). 이렇게만 되면 상관없다. 문제는 이런 식의 패턴이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노력도 안 하고 약도 안 먹는 사람조차 있다는 게 더 문제다.

당뇨병에는 유산(遺産)효과라는 게 있다. 당뇨는 초기에 집중적인 치료 효과를 해야지, 나중에 아무리 잘해도 따라갈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식이요법과 운동으로도 안 되면 현실을 직시하고 약을 먹어야 한다. 그게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다. 치료 중인 환자들의 저항이 가장 심할 때가 인슐린 처방 권고를 받았을 때다. 자가주사 행위가 약물 중독자를 연상시키고 남 보기에도 창피하다는 것이다.

우리 의원에도 "죽으면 죽었지 인슐린은 안 맞겠다"는 환자가 몇 명 있다. 그래서 간혹 필자가 협박까지 해야 한다. "요즘 의술이 발달해서 문제예요. 예전엔 당뇨합병증으로 심장마비, 뇌출혈이 생기면 급사(急死)하는데 요즘은 119하고 응급실이 무조건 살려내요. 오히려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된다니까." 그래도 요지부동이다. 환자는 편안하지만, 의사한테는 환자 몸속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까 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