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회(학회장 이인호 서울대 교수)가 9일 기본소득 쟁점에 대한 경제학자 34명의 경제토론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8일까지, 학자들이 설문에 응하고 원하는 경우 추가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다. 경제학회 회원 중 청람상·한국경제학술상 수상자, 명예회장, 학회 학술지 편집위 구성원 등 71명의 패널로 구성한 '경제토론'에서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중 34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이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쟁쟁한 경제학자들이 정치권에서 논쟁 중인 기본소득 도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8개 쟁점 중 논란이 많은 4개 쟁점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설문 답변 내용과 추가 의견 전문을 싣는다. 학회는 "이번 설문은 나원준 교수(경북대)와 양재진 교수(연세대)가 초안부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디지털 전환 등 미래 기술 변화로 인해 일자리로부터의 소득 기회가 감소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의 도입이 필요하다(2번 문항).

→결과적으로 도입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56%, 필요하다는 의견이 35%였다.

-강한 부동의 32% 권남훈 김세익 김우찬 박성훈 윤참나 이수형 장용성 조진서 최인 편주현 허정
-약한 부동의 24% 고영우 김병연 김현철 성태윤 안재빈 이우헌 조원기 현혜정
-중립 9% 강창희 김용성 한진희
-약한 동의 26% 김정호 김준성 김희삼 서경원 윤경수 이영선 이인실 이종화 조장옥
-강한 동의 9% 조석주 진양수 홍인기

△권남훈=미래 기술변화로 인해 일자리의 소득기회가 감소한다는 것부터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명제다. 설령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대비하는 방법이 꼭 기본소득이어야 한다는 논리도 부족하다.

△김우찬=너무 불확실한 먼 미래의 이야기다. 기다리는 지혜를 발휘해 먼 훗날 판단을 해도 늦지 않다.

△김현철=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입장이나, 그 정당성이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급격한 일자리감소를 예측함으로 확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박성훈=세금을 감소시키는 것은 어떤가?

△안재빈=기술변화 등으로 인한 소득기회의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기본소득제도가 가장 적절할 지에 대해서는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수형=대량 실업에 대한 실증 증거 부족

△이우헌=기술변화에 대한 대응으로는 기본소득 제공보다는 규제개혁을 통한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더 필요하다고 봄

△장용성=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최인=급격한 기술발전은 지난 100년간 여러번 경험했다. 기술발전은 궁극적으로 인류의 소득을 증대시켜 왔으므로 기본소득의 존재이유가 될 수 없다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면 자유 시장 원리에 충실해야 하며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편이 바람직하므로, 공공 영역을 축소하면서 일정 수준의 소득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기본소득의 도입은 긍정적이다(4번 문항).

→결과적으로 반대 의견이 50%, 동의는 27%였다.

-강한 부동의 32% 김우찬 김희삼 안재빈 윤참나 이수형 장용성 조진서 최인 허정 현혜정 홍인기
-약한 부동의 18% 강창희 고영우 김병연 성태윤 이인실 조원기
-중립 24% 김세익 김용성 김현철 박성훈 윤경수 이우헌 이종화 편주현
-약한 동의 24% 권남훈 김정호 김준성 이영선 조석주 조장옥 진양수 한진희
-강한 동의 3% 서경원

△권남훈=효율적 복지전달체계라는 의미로서 기존 공공서비스를 기본소득 형태로 전환하는 것은 논의와 검토를 해 볼 가치가 있다. 다만 지금까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성공한 사실이 없다는 점은 현실적 한계를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김우찬=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결국 명목세율 인상 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즉, 예산중립 기본소득 제도). 재정에는 전혀 부담을 주지는 않겠지만 최하위계층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이를 차상위계층과 중위소득계층에서 이전시키는 효과가 예상된다. 논의조차 할 필요 없는 도입 근거다.

△김현철=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입장이나, 기본소득이 국가 개입이 최소화되는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재빈=자유시장 원리에 충실할 때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전제에 동의하기 힘들고, 기본소득의 도입이 과연 공공영역을 축소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

△이우헌=공공영역을 축소하되 전국민이 아닌 소득 하위계층의 기본소득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장용성=지원은 어려운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함

△최인=4대 연금, 4대 보험이란 공공영역을 없애고 기본소득제를 실시한다면 중간계층만 이득을 보고 저소득층은 손해를 보게 된다.

△허정=공공영역의 축소와 기본소득 도입과는 무관하다.

△홍인기=아무리 정부실패의 문제를 일소하기 어렵더라도 공공 영역에서만 가능한 역할과 기능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공공 영역의 축소를 전제한 기본소득의 도입에는 찬성할 수 없음.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주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정 여건 상 가능한 기본소득으로는 급여 수준이 너무 낮아 사각지대 해소에 실효성이 없다(6번 문항).

한국경제학회 기본소득 '경제토론' 6번 문항과 결과.


→찬반이 가장 분명하게 갈린 항목이었다.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이 72%, 있다가 18%였다.

-강한 부동의 6% 김현철 홍인기
-약한 부동의 12% 김정호 서경원 조석주 조원기
-중립 9% 권남훈 김용성 김희삼
-약한 동의 30% 강창희 고영우 김준성 안재빈 윤경수 이영선 이종화 조장옥 진양수 한진희
-강한 동의 42% 김세익 김우찬 박성훈 성태윤 윤참나 이수형 이우헌 이인실 장용성 조진서 최인 편주현 허정 현혜정

△권남훈=기본소득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광범위한 증세가 수반되어야 한다. 현재의 재정여건상 어려운 것은 맞지만 어차피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해서는 국가 복지체계의 대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만을 짚어서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본소득이 어떤 정책 패키지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접근하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반론이라고 볼 수 있겠다.

△김현철=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소득세를 큰 그림에서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과 소득세의 추가 개편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유사한 목적의 프로그램과 복지제도의 변화도 동반되어야 한다. 기본소득 지불 금액의 수준은 소득세의 개편 방향에 따라 또 유사 목적의 프로그램 변화 여부에 따라 상당히 다를 것이다. 가령 고소득자 증세 및 근로소득세액공제 개편과 동시에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지불가능한 기본소득 지불 금액은 더 커질 것이다. 또한 향후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지불가능한 기본소득의 액수에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정부 재정을 기반으로 추계한 지불가능한 기본소득 지불 수준이 낮아서 기본소득에 반대한다는 논리는 적절하지 않다.

△성태윤=보편적인 형태로 의미있는 규모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은 막대한 재원이 소요돼 증세가 불가피하고 실제로 소득이 낮은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가 어려워서,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모든 계층에 지급하기보다는 실업급여와 근로소득장려세제의 강화 등 선별적인 형태로 소득이 낮은 계층의 소득을 지원하고 보전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는 있지만 국가가 원유와 같은 자연자원을 보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규모 재정수입을 필요로 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처럼 대규모 예산을 지속적으로 조달하기는 현실에서 쉽지 않다.

△안재빈=기존의 복지지출에 일정 기본소득이 더해진다면 한계계층에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존 복지지출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전 국민에 보편적으로 일정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한계계층에 대한 실효성은 떨어질 수 있다.

△최인=경북대 최한수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재정 여건 상 가능한 기본소득은 수준이 너무 낮아 저소득층이 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홍인기=기본소득의 수준이 낮더라도, 고령연금의 필요성에서 알 수 있듯이, 최저생계를 유지하는 일조차 버거워하는 계층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음.


◇소득 재분배나 양극화 문제 완화에 있어서 빈곤층의 생계를 지원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실직에 따른 소득 상실을 보전하는 고용보험 등 기존의 사회안전망이 기본소득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이므로 기본소득의 도입은 불필요하다(7번 문항).

→결과적으로 불필요하다는데 동의가 55%, 반대가 27%였다.

-강한 부동의 9% 김현철 이수형 홍인기
-약한 부동의 18% 김정호 김준성 김희삼 이우헌 조원기 진양수
-중립 18% 권남훈 김용성 서경원 이영선 조석주 한진희
-약한 동의 26% 고영우 김병연 성태윤 박성훈 안재빈 윤경수 이인실 이종화 조장옥 편주현
-강한 동의 29% 강창희 김세익 김우찬 윤참나 장용성 조진서 최인 허정 현혜정

△권남훈='더 효과적인'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기본소득으로의 전환에 수반되는 현실적 어려움이나 재정부담 등을 생각한 것이라면 기존의 사회안전망이 더 효과적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복지전달체계로서의 일반적 효율성은 음의 소득세와 같은 기본소득 형태가 더 나을 수도 있다.

△김우찬=앞서 질문 4에서 설명한 이유로 명목세율 인상 없는 기본소득제도(즉, 예산중립 기본소득제도)는 소득 재분배나 양극화 문제 완화에 있어서 기존의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고용보험제도에 비해 효과성이 떨어진다.

△김현철=기본소득이 유사한 목적의 기존 제도를 완전히 대체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 소득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기존의 복지체계를 대체하는 개념도 아니고, 고용보험을 대체하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기본소득 논의는 소득세를 어떻게 개편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유사한 목적의 기존 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기본소득과 고용보험은 공존해야 한다. 기본소득과 고용보험이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가 하는 질문은 마치 국제원조가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와 같이 답이 없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구체적인 각론을 따져서 실증분석을 해야 할 문제다.

△안재빈=기존의 복지정책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기보다는 기존의 복지정책을 보완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수형=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고용보험 제도에 헛점이 너무 많아 그 자체로 사회안전망이 잘 작동된다고 보기 어려움

△이우헌=복지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소득 하위계층에 대한 기본소득 제공이 필요하다고 봄. 단, 기존의 각종 복지급여와의 중복을 배제하고 관련 행정수요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최인=4대 보험, 4대 연금, 기타 빈곤층 구제 정책을 더욱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홍인기=기초생활보장제도와 고용보험은 이미 실행 중이고 몇몇 선진국에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제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상의 어려움 등이 발생하는 경우 언제든지 사회 전체적인 반대와 반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음. 차라리 낮은 수준이라도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소득과 부에 대한 누진적 조세체계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 옳은 방향임.

◇'경제토론'에 참여한 학자 명단(34명)
강창희(중앙대) 고영우(한양대) 권남훈(건국대) 김병연(서울대) 김세익(고려대) 김용성(KDI) 김우찬(고려대) 김정호(아주대) 김준성(경희대) 김현철(코넬대) 김희삼(광주과기원) 박성훈(조선대) 서경원(서울대) 성태윤(연세대) 안재빈(서울대) 윤경수(가천대) 윤참나(KAIST) 이수형(서울대) 이영선(연세대) 이우헌(경희대) 이인실(서강대) 이종화(고려대) 장용성(서울대) 조석주(경희대) 조원기(고려대) 조장옥(서강대) 조진서(연세대) 진양수(성신여대) 최인(서강대) 편주현(고려대) 한진희(가천대) 허정(서강대) 현혜정(경희대) 홍인기(대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