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9일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할 때 들고 있는 메모지에 '75(붉은 실선)'가 적혀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9일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오는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계기로 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언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포착됐다. 지난 7일 방한한 그는 이날 서 실장과 협의를 마치고 오산공군기지에서 전용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9일 청와대에서 메모지(붉은 실선)를 들고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하고 있다.

취재 결과, 비건 부장관이 이날 서 실장과 대화할 당시 그의 손에 든 메모지에는 ‘-(붙임표)’로 나눈 여러 항목 중 하나에 ‘75’로 추정되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초기 분석에서 이 숫자 뒤의 영문자가 ‘km’로 파악돼 ‘75km’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DMZ(비무장지대)에서 북쪽으로 ‘75㎞’ 떨어진 북한 강원도 안변군의 금천리 미사일 기지를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비건 부장관이 여러 사안 중 하나로 북한의 미사일 활동 관련 우려를 서 실장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9일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를 만날 때 들고 있는 메모지에 '75(붉은 실선)'가 적혀있다.

하지만 2차 분석 과정에서 ‘비건 메모’의 해당 부분은 75번째 또는 75주년을 의미하는 ‘75th’일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그 뒤의 두 단어는 ‘anniv’와 ‘kwp’로 파악됐다. 즉,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의미하는 ‘75th Anniversary Korea Worker's Party’를 줄여 썼다는 것이다.

'비건 메모'. '75th anniv kwp'라고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 사이에선 그간 8월 한미 연합훈련, 올 11월 미 대선과 함께 노동당 창건 75주년 등 세 시점을 전후로 북한이 ‘깜짝’ 도발을 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돼왔다. 비건 부장관이 서 실장에게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놓고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협상력을 높일 목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 등 대미(對美)·대남(對南) 무력 도발 징후를 보여왔다. 이에 미국은 각종 특수정찰기 동원해 대북 감시 작전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왔다. 비건 부장관 방한 일인 지난 7일에도 미 육군의 가드레일(RC-12X) 정찰기가 강원 내륙 일대를 비행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1시간 10분 동안 이뤄진 서 실장과 비건 부장관과의 접견에서 “최근의 북한 동향에 대한 분석 공유와 함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방안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비건 부장관은 특히 미북 대화 재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긴밀한 대북 한미 공조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서 실장에게 전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비건 부장관은 전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하고 가진 약식 기자회견에서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겨냥해 “(미국은) 북한에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 “나는 최선희 부상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면서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미 대선 전 북한의 도박을 억제하는 등 리스크 관리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방한에 이어 이틀 일정으로 방일(訪日)하는 것도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맞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