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의 첫 여성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지휘자 김은선(40)이 올해 프랑스를 상징하는 음악 행사의 지휘봉을 잡는다. 프랑스 대표 오케스트라인 라디오프랑스는 "오는 14일 오후 9시 15분(현지 시각)부터 파리 에펠탑 앞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열리는 프랑스혁명 기념일 콘서트에서 김은선이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와 라디오프랑스 합창단, 어린이·청소년 합창단을 지휘한다"고 밝혔다.

김은선은 “학교 다닐 때 교과서로 배웠던 역사적 날을 기념하는 곳에서 연주하게 돼 설렌다”고 했다.

7월 14일은 자유·평등·박애의 가치를 내세운 프랑스혁명 기념일.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고 혁명에 불을 붙여 '바스티유의 날'로도 불린다. 프랑스 최대 국경일로 학교와 관공서,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대부분 문을 닫고, 밤이면 불꽃놀이가 에펠탑 주변을 수놓는다. 광장에선 프랑스 최대 음악 행사 가운데 하나인 이 음악회가 열린다.

8일 에펠탑이 보이는 숙소에서 전화를 받은 김은선은 "미 휴스턴에서 지내다 파리에 들어와 자가 격리를 끝냈다"며 "프랑스 정부에서 별도의 특별 입국 허가증을 받았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하티아 부니아티슈빌리, 소프라노 소냐 욘체바, 바리톤 뤼도비크 테지에 등 세계 무대를 누비는 정상급 독주자 8명도 함께한다. 연주 곡목은 논의 중. 하지만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헝가리 행진곡'으로 시작해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다 같이 부르며 마치는 전통은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콘서트는 프랑스 공영 텔레비전·라디오로 전역에 생중계되고, 인공위성으로도 전 세계 10여 나라에 중계된다. 지난해 콘서트는 300만명 넘는 시청자가 지켜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 확산을 우려해 오케스트라 단원 숫자를 65명으로 줄이고, 합창단도 절반인 48명만 오른다. 마스크 착용도 고려 중이다.

김은선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대에 재학 중이던 2008년 스페인 지휘자 헤수스 로페스코보스가 주최한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 뒤 독일·영국·이탈리아의 유명 오페라극장에 진출해 '포스트 정명훈'으로 기대를 모았다. 내년엔 '라 보엠'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할 예정이다. 그는 "어떤 무대든 오케스트라와 만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똑같다"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음악을 만드는 것만 생각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