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정시행 특파원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 마지막 날인 5일(현지 시각) 뉴욕 브루클린의 코니 아일랜드 해변. 대서양을 보고 동서로 길게 뻗은 롱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유명한 해변이다. 비키니 차림의 뉴요커들이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끝없이 펼쳐져 눈이 닿는 지평선을 모두 덮었다. 성수기에 최대 100만명이 몰리는 날도 있다는데, 이날이 바로 그날 아닌가 싶었다.

코니 아일랜드는 최근 뉴욕시가 3단계 경제 재개로 야외 활동을 허용하면서 지난 1일 폐쇄 100여일 만에 재개장했다. 세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가장 심하게 강타당했던 뉴욕이 조금씩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은 기자는 당황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뉴욕주는 코로나 확산세가 누그러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확진자가 매일 600~900명씩 나온다.

이곳에서 마스크 쓴 이는 청소부 두 명 외엔 보지 못했다. 안전요원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더운 날씨에 해변에서 어떻게 마스크를 쓰라고 하나. 대신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6피트(약 180㎝) 거리를 둘 수 없을 만큼 붐볐다. 모르는 사람끼리 머리를 맞대고 누워 선탠을 할 정도였다. 한국 찜질방에 온 것 같았다.

이번 독립기념일 연휴에 미 전역의 웬만한 해변과 물놀이장은 다 비슷한 모습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재개장한 뉴저지의 저지쇼어, 버지니아 비치, 델라웨어 리호보스 비치, 미시간 다이아몬드 호수, 위스콘신의 워터파크 등이 사흘간 마스크를 끼지 않은 민얼굴의 인파로 붐볐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 시각) 뉴욕의 휴양지 코니 아일랜드에 파라솔과 피서객들이 빼곡하다.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기 힘들고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도 지켜지지 않는다. 6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300만명에 육박했다. 전 세계 확진자 중 4분의 1 이상이 미국인이다.

각 주정부는 이번 독립기념일에 불꽃놀이와 퍼레이드, 공연 등을 대부분 취소하거나 온라인 중계로 돌리고 식당·주점 실내 영업을 막아가며 군중 밀집을 막았다. 그러나 해변의 인파만큼은 손을 쓰지 못했다. 장기간 격리에 지친 미국인들은 여름이 시작되자 쏟아져 나왔고,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주지사들은 언론에 "다른 건 몰라도 해변까지 막으면 반발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고, 현장 관리들도 "놀러 나온 사람들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최근 2차 확산세가 무섭게 퍼진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 등만 주요 해변을 폐쇄했다.

미국은 곧 코로나 누적 확진자 3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6일 현재 미국 확진자는 총 298만명이다. 최근 감염자가 하루 4만~5만명씩 쏟아진 결과다. 세계 누적 확진자 1155만명 중 4분의 1 이상이 미국에서 나왔다.

이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일 뉴햄프셔에서 대규모 대선 유세를 강행키로 했다. 지난달 오클라호마에 이어 코로나 국면에서 여는 두 번째 대선 집회다. 다만 이번엔 참석자들에게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나눠주고 마스크 착용을 강력 권장하겠다고 트럼프 선거캠프는 밝혔다.

코로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미국은 이웃 나라에서 점점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멕시코는 5일 국경 도로를 일시 폐쇄했다. 국경 도로를 잇는 애리조나에서 코로나 환자가 쏟아지자 "미국인 오지 말라"며 멕시코 주민들이 차량으로 도로를 막았다. 캐나다에선 입국 후 2주 격리 규정을 위반한 미국인 60대 부부에게 각각 벌금 1000캐나다달러(약 88만원)를 부과했다. 앞서 유럽연합은 14국에 국경을 재개방하면서 미국은 제외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미국은 세계에 담을 쌓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세계가 미국에 담을 쌓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