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전염성 질병의 진화’를 저술한 미국 루이빌대 이월드(P W Ewald) 교수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던 무렵 독창적인 방역 제안을 했다가 괜한 곤욕을 치렀다. 백신 개발비의 극히 일부를 떼어 콘돔과 주사기를 구입해 나눠 주자고 제안했다. 성적으로 활발한 사람들에게 콘돔을, 그리고 마약중독자들에게 주사기를 무제한 공급해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자는 ‘행동 백신’ 정책 제안이었다.

바이러스는 사실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전파 경로만 차단하면 이미 감염시킨 숙주와 운명을 같이하고 만다. 치명률이 높아 전파력이 그리 크지 않던 에이즈 바이러스가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과 마약중독자들 사이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걸 막을 유력한 방편일 수 있었건만 의학계로부터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말라리아 발병률을 가장 크게 낮춰준 게 대단한 치료제가 아니라 한낱 모기장이었는데.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며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방역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이러다가 2차 대유행으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 자칫 이월드 교수 신세처럼 될까 두렵지만 감히 전 국민 행동 백신 접종을 제안한다. 본격 휴가철로 들어서기 전에 모두 자발적 자가 격리 기간을 가져보자.

사회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최소 인력만 남겨두고 나머지 국민은 모두 2주간 완벽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자. 그러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더 이상 새로운 사람에게 옮아가지 못한다. 그동안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에 격리해 치료하고 접촉 여부를 추적하면 환자는 현격하게 감소할 것이다. 물론 기본 수칙은 늘 따라야 하지만 한번 리셋(reset)하고 가면 훨씬 홀가분하게 여름을 맞을 수 있다. 백신은 구성원 절대다수가 접종해야 효과가 있다. 전 국민이 행동 백신을 접종하면 지극히 단순한 방법으로 대단히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