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나라 18세기 실학자들의 명단에 반드시 이덕리(李德履·1725~ 1797)란 인물을 추가해야 합니다."

연구실에서 만난 정민(59)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말했다. 국내 대표적 고전학자인 그는 최근 이덕리가 쓴 '상두지(桑土志)'(휴머니스트)를 처음으로 번역해 출간했다. 제자인 강진선·민선홍·손균익·리페이쉬안·최한영과 공동 작업한 결과물이다. '상두'란 뽕나무 뿌리를 말하는데 '土'자는 뿌리의 뜻일 때는 '두'로 읽는다. '시경'의 '장맛비가 오기 전에 저 뽕나무 뿌리를 가져다가 둥지를 얽었거늘'이란 구절로 인해 유비무환의 의미로 쓰인다.

정민 교수에게 지금까지 쓴 책이 몇 권이냐고 묻자 "쌓아놓으면 내 키는 넘어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당시 국방 분야의 서적 중 하드웨어 방면으론 거의 유일한 책이 '상두지'"라고 말했다. 청나라가 다시 전란을 일으킬 것을 대비해 군비 마련, 군량 조달을 위한 둔전(屯田)의 조성, 병력 수급, 방어 시설, 무기 제조·사용법까지 국방 시스템과 안보 인프라를 자세하게 서술했다는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치밀한 통찰력의 예는 차(茶) 무역을 활성화해 군비를 마련한다는 실용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것. 1년에 5000냥을 들여 차 1만근을 생산하면 포장·운송·물류·인건비를 빼도 8만냥이 남는다는 계산이었다. 정 교수는 "당시로선 황당한 얘기 같았겠지만, 실제로 태평양전쟁 때 일제가 보성 차밭에서 떡차 4만개를 생산해 몽골 전선에 납품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군사 요충지에 성을 어떻게 짓고 어떤 전술을 사용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는 대목은 이케아 DIY(스스로 만들기) 가구 조립 안내서를 연상케 할 정도다. 이순신의 거북선을 육상전에 응용한 귀차(龜車), 압록강 빙판에서 벌어질 전투를 대비한 빙차(氷車) 같은 신무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덕리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불우한 인물이었다. 정조 즉위 초에 그의 형 이덕사가 사도세자 신원 상소를 너무 일찍 올렸다 처형당했고, 이덕리는 21년의 귀양살이 끝에 유배지 영암에서 죽었다. 다산 정약용이 '상두지'를 읽고 감탄해 자기 저작에 인용했는데, 이 때문에 지난 200년 동안 저자가 다산으로 잘못 알려지는 결과를 낳았다.

정 교수가 이 책의 진짜 저자를 찾아낸 과정은 미스터리 소설처럼 흥미롭다. 제목만 남아 있던 한국 차(茶)의 전설적 책 '동다기'를 우연히 발견한 뒤 그 책이 '상두지'와 함께 이덕리란 인물이 쓴 것을 알게 됐다. 후손조차 그의 실체를 잘 몰랐던 이덕리는 정 교수에 의해 극적으로 복권됐다. 정 교수는 2018년 이덕리를 위한 묘비명도 지었다.

정 교수는 최근 다산이 유배지에서 찾았던 불교 유적지를 주제로 한 '다산과 강진 용혈'(글항아리), 한국 차 문화사 자료를 집성한 '한국의 다서'(유동훈 목포대 연구원과 공저·김영사)도 출간했다. 그는 "책을 하도 많이 내서 이젠 출판사에 미안할 지경"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오히려 틀어박혀 연구할 시간은 더 많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