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4일 미국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당시 미 대통령 당선인과 실리콘밸리의 IT 업계 최고경영자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트럼프 바로 오른쪽에 피터 틸 페이팔 공동 창업자가 앉아있다.

실리콘밸리의 거의 유일한 트럼프 지지자 피터 틸이 올해 미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일단 도울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피터 틸은 세계 최대 전자결제 시스템 회사인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억만장자 벤처투자자로 꼽힌다. ‘코로나 사태·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잇단 지지율 하락세에 실리콘밸리의 마지막 우군마저 트럼프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은 2일(현지 시각)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틸이 하와이 사유지의 친구와 동료들과 나눈 대화에서 “트럼프의 재선이 점점 더 승산 없는 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올해 트럼프의 대선 선거 운동에 빠질 계획이다. 그의 향후 전망에 관심을 잃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11월 대선 무렵엔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져들 것 같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현직 대통령도 도전자에게 불리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

◇사사건건 트럼프와 부딪치던 실리콘밸리에서 유일한 트럼프 지지자

앞서 실리콘밸리와 트럼프는 정반대 성향을 보이며 건건이 부딪쳤다. 단적으로 지난달 말 트럼프가 외국인의 ‘취업 비자’ 신규 발급을 연말까지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두고도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들은 똘똘 뭉쳐 반발했다. 백악관은 코로나로 실직한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우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 같은 실리콘밸리에 필요한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들의 취업 비자 발급까지 중단되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달 23일 트위터에 “이번 조치에 깊이 실망했다”고 밝혔다. 인도 출신인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역시 “계속 이민자 편에서 모두를 위한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고 했고, 아마존은 성명을 통해 “정부 정책이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 주요 정책은 전통 제조업 부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실리콘밸리는 혁신 기술로 전통 제조업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 이민 제한을 통해 전통 제조업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트럼프와 우수한 고학력 이민자들을 계속 빨아들이려는 실리콘밸리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실리콘밸리의 단일대오와 달리 틸은 트럼프를 공개 지지해왔다. 그는 2016년 대선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RNC)에서 당시 미국의 경제 상황을 비판하며 트럼프가 미국을 재건할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당시 트럼프 선거 캠프와 관련 단체에 125만달러를 기부하고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 연설도 했다.

◇트럼프에 베팅한 덕에 IT업계서 유일하게 2016년 트럼프 인수위원회 영입… 올해 트럼프 지지서 발뺀 것도 승부사적 베팅?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틸의 트럼프 지지 원인을 분석하며 “틸은 벤처투자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전했다. “(규모가) 작고 장기적으로 큰 이익이 되는 것을 골라서 투자한 셈”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 같은 공으로 틸은 트럼프 당선인 인수위원회에 IT 업계에서 유일하게 집행위원으로 포함됐다. 영국 잡지 더위크는 “틸이 트럼프를 지지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권력을 얻게 됐다”며 “그의 베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평했다.

2016년 12월 14일 미국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당시 미 대통령 당선인과 실리콘밸리의 IT 업계 최고경영자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트럼프 바로 오른쪽에 피터 틸 페이팔 공동 창업자가 앉아있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 사진 왼쪽부터 트럼프의 차남 에릭,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 팀 쿡 애플 CEO, 새프라 캐츠 오러클 CEO.

WSJ에 따르면 소식통은 틸이 현재로선 오는 8월 24∼27일 예정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올해 트럼프에게 후원금을 낸 적도 없고 낼 계획도 없다고 한다. 대신 같은 기간 치러지는 미 상·하원 의회 선거엔 공화당을 위해 수백만달러를 후원금으로 낼 전망이다. 현지 외신들은 “틸이 벤처투자자답게 트럼프의 가능성을 보고 베팅을 조정했다”고 전했다.

다만 틸이 트럼프와 전적으로 갈라서지는 않을 전망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틸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전히 투표할 생각이며, 트럼프와의 공개 결별이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선거 캠프 대변인도 틸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였고 여전히 그렇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