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15층 위원장실. 한 민노총 조합원이 "위원장이 자리를 뜨려고 한다"고 하자 다른 조합원이 "총리실만 눈에 보이고 조합원은 눈에 안 보이냐"며 막아섰다. 이들은 김명환 위원장을 둘러싸고 "노사정 안건을 폐기하든지 사퇴하라"며 "(건물을) 나가려면 사퇴하고 나가라"고 했다. "노사정 대화에 대해 해명하라"고도 했다. 조합원들은 "자본과 정권에 야합하는 민노총 집행부 사퇴하라" "노사정 합의 집어치워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한 조합원은 욕설과 함께 "우린 한국노총과 다르다고 그랬는데, 말도 안 하고 조합원들에게 사기 칩니까"라고 했다. "정부가 (민노총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위원장 감금하고 "대화 집어치워라"

민노총 조합원 100여명은 이날 아침부터 민노총 사무실 근처로 모였다. 노사정 합의문을 민노총이 수용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중앙집행위원회(중집위)가 오전 8시 예정돼 있었는데, 이 회의를 주재하려 출근하는 김명환 위원장을 막기 위해서였다. 민노총 내 강성파로 분류되는 '현장파' 소속 조합원이 대부분이었다. 김 위원장은 중집위 개최가 어렵자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때 조합원 수십 명이 김 위원장을 둘러싸고 입구를 막아섰다. 김 위원장은 전날 일부 조합원에게 "(합의안을) 살려야 한다는 게 내 판단이고 소신이고, 빠른 시일 내에 제 거취를 포함해 판단하겠다"며 민노총 내부 동의 없이 노사정 합의안에 서명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실력 행사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텅빈 민노총 자리 - 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 테이블에 마련된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 자리가 비어 있다. 노사정은 지난달 29일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이 고용 유지, 기업 살리기, 사회 안전망 확충 등에 협력한다’는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민노총 내부 강경파의 반발로 최종 합의를 하지 못했다. 민노총 내 강경파는 1일 김명환 위원장을 6시간 가까이 사실상 감금하며 협약식 참석까지 막았다. 민노총이 불참하며 협약식은 취소됐다.

최초 합의안이 나온 것으로 알려진 지난달 29일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김 위원장은 당일 민노총 내 의사결정 기구인 중집위를 소집했지만, 반대가 이어지며 30일까지도 합의문을 수용할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30일 저녁 "7월 1일 오전 8시 다시 중집위를 열겠다"고 했다. 1일 협약식 직전 막판 뒤집기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강경파가 힘으로 저지하면서 회의는 열리지도 못했다.

국무총리실은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이라는 문구를 적어놓고, 합의문과 서명을 위한 펜까지 준비해가며 민노총을 기다렸다. 민노총은 결국 행사 시작 15분을 앞두고 불참을 최종 통보했다. 합의식 직후 기자들 상대로 열릴 예정이던 이재갑 고용부 장관의 브리핑도 취소됐다.

◇구급차 실려 응급실 간 민노총 위원장

김 위원장은 자신의 사무실을 막아선 조합원들에게 '오늘 독단적으로 사인하지 않고 내일 향후 방안을 다시 논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오후 2시 30분쯤 건물을 나올 수 있었다. 이후 구급차를 타고 인근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송됐다. 민노총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감금에서 풀려나 위원장실로 돌아갈 때 코피를 한 바가지 쏟았다"며 "스트레스도 심하고 당뇨도 앓고 있고 원래 건강도 안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은 "병원 갔다가 또 기습적으로 노사정 대화에 사인하러 가는 것 아니냐"고 했다. "(병원 간 것은) 결국 본인이 자초한 일"이라는 말도 나왔다.

◇합의문을 고쳐줬는데도 민노총 반발

최초 합의문은 민노총 요구로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고쳐졌다. 하지만 민노총 내부에선 여전히 '해고 금지' 등이 합의서에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한다. 택배기사처럼 근로자와 사업자 성격을 동시에 가진 특수형태근로자를 고용보험에 가입시키는 문제도, 전면 가입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다. 특히 민노총 내 강경 성향인 '현장파'가 반발하는 주축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민노총 내 상대적 온건 세력인 '국민파' 출신이다.

정부가 애초 민노총만 특별 대접하며 노사정 대화를 끌고 가려 한 게 실책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 경사노위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던 중 지난 4월 별개 채널을 만들어 대화하자는 민노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사노위 논의에 참여하던 한노총이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민노총이 합의에 전격 참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다만 노동계 안팎에선 '내부 반발 때문에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민노총은 2일 향후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협약식이 취소된 뒤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최종 무산됐다"며 "대화를 처음 제기한 정부와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가 소모의 시간으로 끝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