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이모 기자로부터 '협박 취재'를 당했다고 주장해 온 이철(수감 중) 전 VIK 대표가 지난주 검찰 참고인 조사에서 "이 기자와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검·언 유착' 차원을 넘어 (4·15) 총선에 개입하려는 의도로 접근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이 전 대표 변호인인 장경식 변호사가 30일 밝혔다. 이에 대해 이 기자 변호인인 주진우 변호사는 "총선 이야기는 (이 전 대표 대리인인) 지모씨가 계속 꺼냈고 이 기자는 '총선은 관심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며 "거꾸로 지씨가 '선거 개입'으로 몰고 가려 했다"고 반박했다.

장경식 변호사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이 전 대표가 최근 검찰 참고인 조사에서 '한동훈 검사장이 정치에 개입하려고 했다. 검찰이 조직적으로 정치 행위를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서울중앙지검 영상녹화실에서 진행된 조사에서 이 전 대표는 "이 기자가 접근해오는 것을 보면서 단순 협박이 아니라고 느꼈다"며 "한 검사장이 윤석열 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이 기자와 함께 이런 일을 꾸민 것 아니냐"고 진술했다고 장 변호사는 밝혔다.

이에 대해 채널A 이 기자 측 주진우 변호사는 "오히려 이 전 대표 측 지씨가 '총선'을 먼저 언급하면서 취재와 선거가 연관된 것처럼 유도했다"고 했다. 그런 내용은 이미 소셜미디어 등에 전문(全文)이 공개된 '제보자X' 지씨와 이 기자 간 녹취록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지씨는 지난 2월 25일 이 기자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보도가) 총선 전에 나가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고 이 기자는 "신경 안 써요. 저는 정치인도 아니고 정계도 아니다"라고 했었다. 이후에도 지씨는 "총선 끝나고?" "검찰이 선거 전에 어떻게든 (수사를) 하려고 그러겠죠"라고 수차례 물었지만 이 기자는 '시기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지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채널A가 3월 말~4월 초를 강조하면서 유시민 이사장 등을 총선 전에 폭로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주 변호사는 "녹취록을 보면 지씨가 입맛에 맞게 이 기자 대답의 맥락을 비튼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선 "수감된 이 전 대표보다는 지씨가 '용병'으로 나서 '검·언 유착' '선거 개입' 프레임을 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의혹을 MBC에 처음 제보했다는 지씨는 횡령·사기 전과가 있는 인물로, 한때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검찰의 내밀한 부분을 아는 금융 전문가 행세를 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친여 매체를 통해 윤 총장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채널A 기자와 접촉을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에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과 황희석 최고위원 사진을 올려놓고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간다. 윤석열 'X검' 부숴보자"라고도 했다.

이런 지씨가 이 전 대표 대리인으로 나선 것에는 법무법인 민본이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본 소속 A 변호사가 수감 중인 이 전 대표가 채널A 기자의 편지를 받은 것을 알고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과정에서 지씨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지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채널A 기자를 만나게 했다는 것이다. 민본은 전(前) 대표였던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거 지씨 사건 변호를 맡은 인연이 있다. 이 로펌 소속 신장식 변호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위증 교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모(수감 중)씨도 대리하고 있다.

지씨는 이철 전 대표를 "아주 오래된 친구"라고 밝혔지만, 실제 만난 적이 없는 걸로 전해졌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접견 제한으로 지씨가 채널A 기자를 접촉한 내용은 A 변호사를 통해 축약적으로 이 전 대표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법조인들은 "'제보자X' 지씨가 '검·언 유착' 등 모든 구도를 만들었을 수 있다"고 했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강요 미수 혐의가 성립하기 위해선 협박의 구체적인 내용과 정황이 있어야 한다"며 "채널A 기자가 보낸 편지 외에 두 단계를 거친 전언(傳言)이 이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