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과학자들이 돼지 코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 3만 건의 시료를 조사했더니 인간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대량 발견됐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어 또 따른 팬데믹(대유행)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견됐다.

류진화 중국 농업대 교수와 조지 가오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장 연구진은 29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중국의 돼지에서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2009년 팬데믹 부른 신종플루 유전자 포함

연구진은 2011~2018년 중국 10개 지역의 도축장에서 3만 건의 시료를 수집했다. 이중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179개가 발견됐는데 대부분 G4 계열로 밝혀졌다. G4 바이러스는 2016년부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G4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 이 바이러스는 유럽과 아시아의 조류에서 발견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2009년의 H1N1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조류와 인간 돼지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를 가진 북미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섞인 형태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2009년 팬데믹을 부른 H1N1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중국의 돼지에서 발견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신종 플루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발견됐다.

2009년 H1N1 신종 인플루엔자는 멕시코에서 처음 환자가 발생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로 퍼졌다. 그해 6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H1N1 인플루엔자의 전염병 경보 수준을 대유행으로 격상했다. 대유행 선언은 1968년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었다. 과학자들은 H1N1 신종 플루 바이러스가 조류와 돼지, 인간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돼지 몸 안에서 유전자가 섞이면서 사람에도 감염되는 형태가 됐다고 본다.

중국 농업대 연구진은 “G4 바이러스에는 2009년 팬데믹을 유발한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포함돼 바이러스가 인간 간 감염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에드워드 홈스 호주 시드니대 교수도 사이언스 지인터뷰에서 “공개된 정보로 보면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곧 인간에게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며 “철저한 감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인체 세포에서 복제돼 사람 간 감염 가능성 커

사람이 G4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는 아직까지 2016년과 2019년 단 두 건에 그쳤다. 이후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도 않았다. 환자들은 집 주변에서 키우는 돼지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세포 실험에서 G4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사람의 기도 상피세포에 감염돼 복제했다. 또 사람과 호흡기가 흡사한 페렛도 역시 G4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 사람 간에 바이러스가 퍼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일반인 230명 대상으로 혈액을 조사했더니 G4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보유한 사람이 4.4%로 나타났다.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돼지 농가에서 일하는 사람은 항체 보유 비율이 10.4%나 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제임스 우드 교수는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에 “중국 연구진이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서 복제될 수 있음을 밝힌 데 주목한다”며 “그럼에도 기존 백신은 이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점이 두려운 사실”이라고 밝혔다. 중국 연구진은 바이러스에 대한 철저한 추적 조사와 함께 백신 개발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