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 해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강규형 교수가 "개인이 거대 권력과 싸우는 것은 못할 짓"이라며 "저는 진흙탕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2년 반 이사직에서 쫓겨나고 대통령 상대 법정 투쟁을 벌이면서 겪은 고통을 토로한 것이다. "심신은 황폐화되고 일상적 삶은 허물어졌다"고도 했다.

강 전 이사 해임 과정은 정권의 '방송 장악' 시나리오 그대로였다. 친정권 노조가 감사원에 감사 요구를 하자, 감사원은 '2500원 김밥집' 법인카드 내역까지 뒤졌다. 방통위는 사용액이 더 큰 이사는 놔두고 강 전 이사 해임건의안만 올렸고, 대통령은 이튿날 바로 재가했다. 노조는 고성능 스피커와 대형 스크린을 장착한 트럭을 몰고 와 그가 재직하는 대학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집앞에서 이웃 주민들에게 '가족들이 법인카드를 쓰지 않았느냐'고 탐문까지 했다고 한다. 홍위병 행태와 다르지 않다.

해임 무효 소송 결과는 재판장이 세 번이나 바뀐 끝에 그의 임기가 한참 지난 뒤에야 나왔다. 복직을 막아 후임인 현 KBS 이사장이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일부러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강 전 이사는 명예훼손·모욕·상해 등 20여건의 고소·고발과 송사(訟事)에 시달리고 있다. 정권의 보복이 이처럼 모질고 집요하다.

강 전 이사뿐 아니다. 정권은 여권 핵심 인사들의 '유재수 감찰 무마'를 고발한 공직자를 비리 혐의자로 몰아 기소했다. 청와대의 적자 국채 발행 압력과 민간 인사 개입을 폭로한 30대 사무관은 "망둥이" "사기꾼" 비난을 받다가 자살까지 시도했다. 정권 불법 혐의를 수사한 검사들이 인사 학살을 당하고, 검찰총장은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조국 전 장관에게 분노해 시위한 시민들이 내란죄로 고발당했는가 하면 공개된 대학 구내에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20대 청년이 '건조물 침입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권이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먼저' '민주' '인권'은 오로지 자기편에만 해당한다.

대자보 청년이 소속됐던 단체가 엊그제 '대자보 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독재 타도를 말하던 자들이 3권을 모두 장악하고 독재 권력을 행사한다"며 "국민 여러분, 우리가 불쏘시개가 되겠다. 뒤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지켜달라는 것이다. 강 전 이사도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상식 대 비상식, 법치 대 폭력의 싸움이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