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찾은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율촌 회의실. 율촌 소속 미국 회계사인 제러미 에버렛(Jeremy A. Everett)씨가 10인석 테이블에 홀로 앉아 동료 변호사들과 화상 회의 프로그램 'Zoom(줌)'을 통해 대화하고 있었다. 한 기업의 세무 상담 준비를 위해 열린 이날 회의에 참석한 동료 변호사들은 에버렛씨와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10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도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직접 만나지 않고 화상회의를 한 것이다. 율촌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고객들이 동의할 경우, 고객들의 법률 상담도 화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율촌 관계자는 "처음에는 옆방에 있는 동료·고객들과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어색했는데 이제는 일상이 됐다"고 했다.
◇화상회의부터 웨비나(웹+세미나)…'비대면'의 일상화
코로나19 확산 여파가 법률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대형 로펌들은 단순한 방역 차원을 넘어 대면(對面) 회의나 상담을 최대한 없애고 화상회의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의뢰인이 변호사 사무실에 방문해 직접 상담하던 전통적인 방식을 넘어 화상을 통한 '비대면(Non-contact)' 법률 서비스가 일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코로나 사태 이후 각 부서·팀별로 인원을 정해 교대 근무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내부 회의는 화상 전화·회의 앱인 스카이프(Skype)와 이메일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김앤장 관계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리걸테크(legaltech) 시대도 본격화할 전망"이라며 "직접 대면을 피하기 위해 개인 PC로 인터넷상에서 함께 회의하고 문서를 공유하며 전자 결재도 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 도입이 코로나 사태 이후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앤장은 또 자사(自社) 프로그램인 '전자증거개시(E-Discovery)'에 소송 관련 정보와 서류, 상대 측이 제출한 수만 건의 의견서 등을 저장해놓는다. 김앤장 변호사들은 수천 페이지의 문서를 뒤지는 대신, 이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검색 기능을 통해 소송에 필요한 서류들을 빠른 시간 안에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율촌은 지난 4월 20일엔 서울 삼성동 율촌 본사 강당에서 공정거래 분야 웨비나를 개최했다. 웨비나란 웹(Web)과 세미나(Seminar)의 합성어로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는 쌍방향 프레젠테이션이다. 이날 자리에서는 '2020년 공정위 업무계획' 등을 중심으로 한 최근 공정거래 정책 및 집행 동향이 발표됐다. 그러나 강당엔 율촌 소속 변호사들 외엔 사람이 없었다.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대기업 법무팀·감사팀 관계자들 200여명은 온라인을 통해 율촌의 웨비나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
2019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법원에 접수된 민사 사건 중 5% 정도만 변호사가 대리한 사건이다. 나머지 95%는 당사자가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95%의 사람 대부분은 변호사 선임비 부담에 혼자 소송하는 방법을 택한다. 법조계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대면 법률 서비스를 통해 95% 중 상당수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슈' 맞춤 TF도 속속 출범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영 악화, 국내외 계약 분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기업들의 법률 자문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사업을 접을지 고민하거나 파산에 직면한 기업도 늘고 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5월 법인 파산 건수는 356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319건보다 11%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 맞춰 국내 대형 로펌들은 속속 '코로나19 대응팀'을 꾸려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김앤장은 금융, 헬스케어 및 개인정보보호법 분야 등의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코로나 19 법률자문팀'을 구성했다.
김앤장은 국내 로펌 중 다양한 전문가가 협업하는 '팀플레이' 업무 방식을 처음 도입해 정착시킨 로펌으로 유명하다. 법무법인 율촌은 기업들의 노무 문제를 전담하기 위한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율촌의 노동팀장은 작년 영국 법률 전문 매체인 '후즈후 리걸(Who's Who Legal)'로부터 노동·고용 분야 최우수 변호사로 선정된 조상욱 변호사(28기)가 이끌고 있다.
법무법인 화우는 외부 변수가 많은 해외 사업 및 국제 거래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 법무(한상구·23기), 국제중재(이준상·23기), 국제거래(이숭기·25기), 인수·합병(김성진·32기) 등의 중량감 있는 파트너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코로나 TF팀을 이끌고 있다. 화우 관계자는 "해외 진출 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전담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코로나19 TF&리소스 센터'를 꾸리고 코로나19 관련 상황과 관련 정부 정책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센터에는 금융, 인수·합병(M&A) 분야와 노동, 조세, 송무, 중재, 부동산 건설 등 분야별 전문가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