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빵' 작가 백희나.

“작가의 권리가 이렇게 미약하다니, 생각한 것보다 더 절망스럽고 처참하다.”

데뷔작 ‘구름빵’으로 한국인 최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문학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백희나(49)씨가 출판사 등을 상대로 낸 저작권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백씨가 한솔교육 등 4곳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에 따라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백 작가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이 확정됐다.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말 그대로 심리하지 않고 별도의 심리·선고 없이 사건을 끝내는 것이다. 판결문도 없이 기각하는 제도다.

비 오는 날 구름 반죽으로 만든 빵을 먹은 아이들이 두둥실 하늘로 떠올라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는 아빠에게 구름빵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는 현재까지 약 45만 부가 팔렸다. 이후 ‘달 샤베트’와 ‘장수탕 선녀님’ ‘알사탕’ 등 그의 작품은 출간될 때마다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구름빵’ 역시 그림책으론 드물게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출판사와 저작권 양도계약을 해서 계약금 850만원과 인센티브 1000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출판사 등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으나 1·2심 모두 패소했다.

백씨가 소송을 낸 상대는 ‘구름빵’을 출간한 한솔교육과 한솔교육의 출판사업 부문이 분할된 한솔수북, ‘구름빵’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강원정보문화진흥원과 디피에스 등 4곳이다.

지난 4월 수상 당시 머물고 있던 태국 방콕에서 귀국해 자가 격리를 끝내고 26일 서울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백씨는 “변호사 측도, 저도 대법원 결정이 당황스러워서 마음을 먼저 수습한 뒤에야 무슨 말씀이든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추스르는 중이었다”고 말했다.

―착잡한 심정이겠다.
"어차피 한솔교육 등 그쪽 사람들은 자기네가 법적으로 잘못한 게 없고, 증명할 준비도 다 되어 있으니 저한테 먼저 소송을 걸라고 누누이 말해왔다. 그들은 대기업이고 저는 개인이니,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것임도 어느 정도 예상했다. 다만 제가 바란 건 상고심인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니 지든 말든, 설사 지더라도 이 사안이 공정하게 제대로 다뤄질 거란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결과에 납득하나?
"상고를 하면서 1심과 2심 판결문이 나올 때마다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서 보냈다. 왜냐하면 법원으로부터 정확한 설명을 들어서 저작권과 관련해 더 이상 잘못된 정보가 퍼지지 않기를, 다른 작가들은 저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리조차 되지 않고 이렇게 속전속결로 거부되다니, 작가의 권리가 이처럼 미약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생각한 것보다 더 절망적이고 처참하다는 느낌 밖에 안 든다. 무엇보다 '구름빵'이 영원히 내 것이 아니란 느낌,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출판사 등 '갑'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솔수북은 지난 4월 입장문을 통해 "'구름빵'의 글·그림 저작권을 백 작가에게 넘겨주기로 구두합의를 했다"고 했는데.
"아니다. 소문과 달리 저는 '구름빵' 저작권을 돌려받지 못했다. 제가 소송을 시작한 것도 출판사가 저한테는 전화 한번 없었으면서 언론에는 협의 중이라고 공표를 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2014년 공정거래윤리위원회에서 저작권 문제가 제기되고 특히 '구름빵'이 불거지니까 한솔에서는 저작권을 돌려주겠다 공표를 했고, 그게 당시 이종걸 의원실에서 발표됐다. 그런데 그 후 강원정보문화진흥원은 '구름빵'에 저작권자(김향수 작가)가 한 명 더 있다며 그에게서 합의를 받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제가 그는 당시 한솔에 소속돼 사진을 찍은 스태프이고 창작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한솔은 당사자끼리 알아서 하라며 확인도 해주지 않았다."

―김향수 작가와의 소송에서 단독 저작자임을 판명 받았다.
"그 판결은 제가 창작 과정에 대한 증거를 명명백백 가지고 있었으니 제가 이긴 거다. 그런데 거기서 승소한 걸로 제가 '구름빵' 저작권을 되찾아온 것처럼 오용이 됐다. 그쪽(한쪽)에서는 저작권을 돌려주지 않고, 요청을 할 때마다 이거는 어디에 가서 허락을 받아오라며 저를 돌렸다. 어렵게 요구 조건을 충족해 가면 말을 돌렸다. 그게 4년을 끌어왔다."

―출판사에 원하는 건?
"다른 조건은 아무 것도 필요없다. 그저 작가의 기본 권리를 지키는 게 목표다. '구름빵'이 2004년 출간됐으니 벌써 16년이 흘렀다. 그 동안의 수입이나 인세는 아무 것도 받지 않겠다 계속 말해왔다. 뮤지컬과 TV애니메이션 등 2차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에도 나는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 그 계약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저한테는 고통의 시간일 뿐이었다. 내가 만든 '구름빵'이 갖가지 2차 콘텐츠로 나오는 걸 그저 묵묵히 지켜만 봤다. 그동안은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으니 비참하게 깨지고 지더라도 뭐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실낱 같이 있었는데, 법원이 공공연히 한솔의 편을 들어준 거니 이젠 과거와는 또다른 고통의 장이 펼쳐질 거란 생각만 든다."

―한솔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 법원이 그렇게 판결한 것 같다 하던데
"창작자에겐 원작이 훼손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독약을 삼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창작자에게 독약인 상황에 옳다고 손을 들어준 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 판결이 옳은 건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젠 끝이 난 건데,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단이 없게 된 건데, '구름빵'은 공식적으로 남의 것이 돼 버렸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빼앗김과 좌절의 연속, 고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결론 짓고 싶진 않다. 이게 조금이라도 더 알려져서, 힘 없는 신인 작가들이 조금이라도 제가 걸어온 지뢰밭을 피할 수 있게 경고등 역할을 하고 싶다. 그 정도의 의미로라도 '구름빵'이 남지 않으면 '구름빵'은 제게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 될 것이다."

―재판은 끝났다.
"저한텐 원리원칙이 중요했다. 작가의 기본 권리인 저작권은 작가가 가져야 한다. 제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가지면 안 된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땐 그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하고, 잘못된 거짓을 퍼뜨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무리 어려운 일이고 욕 먹는 일이라 해도 제가 지켜야만 하는 거라면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이런 결과를 받을 때마다 사람들은 더 좋은 작품을 내서 더 유명해지고 성공해져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어떻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구름빵'이 얼마나 잘 팔렸든 저한테는 제가 만든 작품 하나하나가 다 최고다. 그래서 저는 그런 얘기를 듣는 게 그저 고통스럽다. 법조계든 정치계든 사회를 지탱해주는 큰 틀들이 앞서 나가주지 않으면 현장에서 백날 뛰어봤자 우리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약한 사람들의 보호 장치가 되어줘야 할 법이라는 체계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그쪽 손을 들어줘서 굉장한 절망감을 느꼈다. 뭐가 옳은 일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고 무엇이 사실인지를 파악하고 이 일을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저한테 이 일의 의미는 고통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써 희망적으로 생각한다면, 이게 후배들한테 밝은 길을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