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개발에 이용되는 담배속 식물 니코티나 벤타미아나. 호주 고유종으로 에볼라 치료 항체 생산에도 이용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가 한 해 8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밝혔다. 최근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 바이러스도 흡연자에게 더 잘 감염된다. 이렇게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담배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을 구원군으로 등장했다. 바이러스 유전자를 주입한 담뱃잎으로 코로나 백신을 생산하는 것이다. 담뱃잎 코로나 백신은 곧 인체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농작물과 가축을 이용해 질병 치료용 약물을 만드는 파밍(pharming, 분자농업)이 코로나 대유행을 맞아 주목을 받고 있다. 파밍은 약(pharmaceutical)과 농업(farming)의 영어 단어를 합친 말이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기존 제약산업만으로 백신과 치료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농업까지 파밍을 통해 제약 공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동식물을 이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약물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개월씩 걸리던 백신 제조, 6주로 단축 글로벌 담배 제조 업체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는 미국 자회사 켄터키 바이오프로세싱(KBP)과 담뱃잎을 이용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할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달 생쥐 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하고 이달 말 인체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BAT는 정부 허가를 받으면 매주 100만~300만명 접종분을 담뱃잎에서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역시 담배업체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도 캐나다 바이오업체 메디카고와 담뱃잎으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메디카고 역시 지난달 생쥐에서 백신 효능을 확인했다.

백신은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나 일부 단백질, 또는 유전자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원리다. 지금까지 달걀이나 동물세포 등에서 바이러스를 키워 백신으로 만들었다. 담배 회사들은 대신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라는 담배속(屬) 식물에 주입했다. 연초를 만드는 담배는 니코티아나 타바쿰종(種)이다. 나중에 담뱃잎을 수확해 정제하면 백신으로 쓸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

벤타미아나종 담배는 예전부터 과학 연구에 많이 쓰여 ‘식물계의 실험용 생쥐’로 불린다. 그만큼 유전자 조작과 단백질 정제가 쉽다. 파밍 업체들은 기존 백신 제조는 수개월씩 걸리지만, 담뱃잎 백신은 6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백신 개발에 이용되는 담배속 식물 니코티나 벤타미아나의 잎에 바이러스의 입체 구조를 합성했다. 호주 고유종으로 에볼라 치료제, 독감 백신 생산에도 이용되고 있다.

먼저 담배는 한 달이면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빨리 자란다. 잎도 다른 식물보다 훨씬 커 단백질을 그만큼 많이 얻을 수 있다. 특히 안정성이 뛰어나다. 담뱃잎에는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가 감염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 백신 제조 과정처럼 병원성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 백신 제조 비용의 85%가 생산보다 추출과 정제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담뱃잎 백신은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담뱃잎을 이용한 파밍은 이미 효능을 입증했다. 일본에서는 독감 백신을 담뱃잎에서 만들었고, 국내에서도 바이오앱이 돼지열병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을 세계 최초로 담뱃잎에서 생산했다.

담뱃잎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는 KBP와 메디카고는 2014년 에볼라 치료제인 ‘지맵(ZMapp)’ 개발에도 참여했다. 지맵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세 가지 종류의 항체로 이뤄졌는데, 모두 벤타미아나종 담뱃잎에서 생산했다. 2018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연구진은 노로바이러스 백신을 담뱃잎에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노로바이러스는 매년 7억명이 감염되고 그중 2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

◇젖소는 사람보다 코로나 항체 두 배 생산 코로나에 대항하는 파밍은 가축도 동원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는 바이오 기업 사브 바이오세러퓨틱스는 지난 5월 젖소 혈액에서 추출한 항체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다음 달부터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코로나 치료용 항체 생산에 이용된 젖소. 혈액에 들어있는 항체 단백질을 정제해 코로나 환자 치료에 쓴다.

항체는 바이러스에 결합해 인체 감염을 차단하고, 다른 면역세포의 공격도 유도한다. 제약업체들은 보통 미생물이나 동물세포에 인간의 항체 유전자를 넣어 세포 배양으로 항체를 생산했다. 사브 바이오세러퓨틱스 연구진은 이를 젖소로 대체했다. 먼저 젖소 유전자에 사람 항체 유전자를 끼워 넣었다. 그다음 젖소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DNA를 주사했다. 일종의 DNA 백신을 주사해 면역반응을 유도한 것이다. 젖소는 바로 바이러스에 달라붙는 항체를 생산했다.

젖소는 항체 생산에 여러 장점이 있다. 일단 몸집이 커서 혈액도 사람보다 훨씬 많다. 당연히 항체도 많이 생산한다. 사브 바이오세러퓨틱스의 에디 설리번 대표는 사이언스에 “젖소 혈액은 사람보다 mL당 항체가 두 배나 많다”고 밝혔다.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사브는 세포 실험에서 코로나 완치 환자의 혈장(혈액 액체성분)보다 젖소 항체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을 네 배나 더 잘 차단했다고 밝혔다.

가축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은 이미 효과가 입증됐다. 사브는 앞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항체 치료제를 젖소에서 생산해 임상시험을 마쳤다. 메르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발한다.

◇염소젖으로 항암제도 만들어 파밍이 상용화되면 의약품 가격을 떨어뜨려 환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최근 뉴질랜드 과학자들은 한 달 약값이 400만원을 훌쩍 넘는 대장암 항체 치료제를 염소젖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뉴질랜드 애그로리서치의 괴츠 라이블 박사가 젖에서 항암제를 분비하는 염소를 보고 있다.

뉴질랜드 국립연구소인 애그로리처시의 괴츠 라이블 박사 연구진은 지난 7일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 바이오아키이브(bioRxiv)에 발표한 논문에서 “시판 중인 대장암 치료 항체 세툭시맙을 염소젖에서 추출하는 데 성공했디”고 발표했다. 세툭시맙은 미국 머크가 ‘얼비툭스’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글로벌 연매출이 11조원을 넘는다.

연구진은 염소 수정란에 유선에서 세툭시맙을 만드는 유전자를 주입했다. 나중에 태어난 염소는 세툭시맙이 들어있는 젖을 분비했다. 연구진은 염소젖 1리터에서 세툭시맙 10g을 얻었다. 염소가 한해에 약 800리터의 젖을 분비하니 매년 8㎏의 세툭시맙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