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이 '도널드, 이방카, 재러드 쇼(show)'로 끝날 수도 있겠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맏딸 이방카,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는 불평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폼페이오는 "누가 진짜 전사(warrior)인지 알고 싶다면 주위를 둘러봐야지"라며 참모들이 할 일을 딸과 사위에게 맡기는 트럼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3일(현지 시각) 발간 예정인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에서 2018년 10월 18일의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날 백악관 집무실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존 켈리 당시 비서실장, 폼페이오, 볼턴이 사우디 반(反)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개인 비서가 들어와 "쿠슈너가 멕시코 외교장관과의 통화에 대해 보고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외국 외교장관과의 통화는 당연히 폼페이오가 해야 할 일이었고, 백악관 선임고문(senior advisor)인 쿠슈너의 영역이 아니었다.
켈리는 "왜 쿠슈너가 멕시코 사람들과 통화를 하나요?"라고 항의의 뜻을 담아 큰 소리로 물었다. 트럼프는 똑같이 큰 소리로 답했다. "내가 그러라고 시켰으니까." 회의 후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인 켈리는 "난 전투를 지휘해 본 사람이야. 하지만 이런 똥(shit) 같은 일은 참을 수 없어"라고 했다. 켈리는 이날 폼페이오와 볼턴에게 사임할 뜻을 밝혔고, 그해 말 백악관을 떠났다.
'족벌주의(nepotism)'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다. 맏딸 이방카와 맏사위 쿠슈너가 '선임고문'이란 애매한 직책을 갖고 온갖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볼턴 회고록엔 이들이 '족벌 외교'를 했다고 볼 만한 에피소드가 여럿 소개돼 있다.
작년 6월 30일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날 오후 판문점에서 있을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준비하는 자리라 한·미 양측에서 극소수만 참석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도중 트럼프가 앤서니 오르나토 비밀경호국 부국장보에게 손짓을 해 "왜 이방카와 재러드(쿠슈너)는 여기 없나"라고 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들어오게 하라고 시켰다. "한국 사람들조차 당황스러워했다"고 볼턴은 회고했다. 이방카와 쿠슈너는 이날 판문점까지 따라갔다.
쿠슈너는 자신이 관여할 권한이 없는 여러 외교 문제에 개입했다고 한다. 쿠슈너 가족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조차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관련 업무를 쿠슈너에게 맡기는 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타냐후는 "왜 쿠슈너가 키신저 같은 사람도 실패한 문제에서 자신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쿠슈너는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과도 독자적 소통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알바이라크가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사위'란 이유에서였다.
사적(私的) 연결고리로만 세상을 보는 것은 트럼프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화웨이(華爲) 창업자의 딸이자 글로벌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가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캐나다에 체포됐을 때 트럼프는 "중국의 '이방카 트럼프'"를 체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볼턴은 하마터면 "이방카가 스파이이자 사기꾼인지 전혀 몰랐네요"라고 말할 뻔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