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보낸 시간이 쌓일수록 두려움이 커집니다. 연극, 뭐라 정의 내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그 무엇 같아요. 조금 성장해 한 발자국 다가가면 손잡아줄 듯하다가 또 도망가네요. 그러다 또 오늘처럼 한 손 지그시 잡아주고…. 미칠 노릇이죠. 앞으로 남은 인생, 연극이 저의 두 손 지그시 잡아줄 때까지 노력하고 마무리하는 꿈을 꿔봅니다."
제30회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배우 서이숙(53)의 수상 소감은 한 편의 모노드라마였다. 22일 서울 조선일보사 미술관에서 열린 시상식. 맨 앞자리 수상자 석에 앉았다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두세 걸음 만에 단상 앞에 선 그는 "코로나 사태로 힘든 연극 동지들을 생각하며, 상의 가치와 무게에 누가 되지 않게 애쓰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배우 윤소정·이연규, 평론가 구히서 등 하늘나라로 떠난 "그리운 스승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며 감사 인사도 전했다. 고인들과 얽힌 추억에 웃음이 터졌고, "부디 가신 곳에선 아프지 말고 연극 맘껏 하시라"고 할 땐 모두 숙연했다. 서이숙은 역대 수상자이자 선배인 박정자·손숙·정동환·윤석화, 연출가 한태숙 등에 이어,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남동생의 이름까지 불렀다. "아빠, 저 잘 살고 있죠? 그리고 모든 아픔 버텨주신 저희 어머니, 차멀미가 너무 심해서 제 공연도 한 번 못 보셨고 이 좋은 자리에도 못 오셨어요. 오늘 오셨으면 막 춤추셨을 거예요. 기뻐서 시상식장이 뒤집어졌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까부는 것, 엄마 닮아서 그렇답니다, 하하!"
이해랑연극재단과 조선일보사가 공동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은 한국 연극사의 거목 이해랑(李海浪·1916~1989) 선생의 리얼리즘 연극 정신을 이어가는 국내 최고 연극상. 서이숙은 '허삼관매혈기' '고양이 늪' '고곤의 선물' '오이디푸스' 등 무대에 오른 작품마다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고루 받아온 배우다.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은 서이숙씨에게 트로피와 상금 7000만원을 수여했고, 심사위원장 유민영 단국대 교수는 선정 이유가 적힌 상패를 수여했다.
특별상은 극단 '신협(新協)' 연출가로 신협동우회 회장인 전세권(81)씨가 받았다. 올해 설립 70주년을 맞은 '신협'은 이해랑, 김동원 선생이 중심이 돼 만든 우리 현대 연극의 텃밭과 같은 극단. 18년간 신협 대표를 지낸 전세권씨는 "1957년 신협 연구생으로 들어가 이해랑 선생께 연극에 관한 모든 걸 배웠다. 선생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매년 4월 8일 이해랑 선생 기일에 맞춰 치러졌던 시상식은 올해 코로나 사태로 미뤄지다 이날 열렸다. 역대 수상자와 연극인 등 200여 명이 참석했던 이전과 달리, 참석자도 수상자와 가족·지인, 심사위원 등 약 50명으로 최소화했다. 또 좌석 사이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등 '사회적 거리 두기' 원칙에 충실하게 치러졌다.
시상식에는 연출가 심재찬·박정희, 이전 수상자인 배우 정동환·박정자씨, 심사위원으로 유민영 교수, 배우 손숙, 연극평론가 김윤철, 연출가 한태숙, 배우 길해연씨도 참석했다. 이해랑 선생 가족으로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과 차남 이민주, 삼남 이석주씨, 이해랑연극상 운영위원장인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조선일보사 홍준호 발행인 등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