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소설가 한은형(41)씨가 “새로 나온 메뉴인데 마셔보고 싶었다”며 ‘아이스 쑥 라테’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커피 대신 쑥 가루를 우유와 섞어 얼음을 띄운 아이스 쑥 라테라니. 아보카도·아스파라거스·당근·민트·깻잎·쌈밥 등 채소와 채소로 만드는 음식에 대해 쓴 에세이집 ‘오늘도 초록’(세미콜론)을 최근 펴낸 저자다운 음료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소와 채소로 만든 음식에 대한 에세이집‘오늘도 초록’을 낸 소설가 한은형씨는“잘 익은 아보카도에 칼을 푸욱 찔러 넣을 때의 승리감이라는 게 있다. 그 상태로 아보카도의 목을 딸깍 하고 비틀 때의 쾌감도 상당하다”고 했다.

―채식주의자인가.

"10년 전쯤 돼보려고 한 적은 있었다. 1년 정도 하다가 중단했다. 체중이 5㎏ 넘게 빠지고 보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서 괴로웠다. 무엇보다 몸에 기운이 없었다. 야채가 아닌 것들도 다시 먹게 되면서 야채만 먹을 때보다 오히려 야채를 좋아하게 됐다. '초록주의자'나 '친록파' 정도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어떻게 초록주의자가 됐나.

"언제부턴가 탄수화물을 잘 먹지 않게 됐다. 밥이나 국수를 줄이게 됐다. 탄수화물이 몸을 무디게 만든다는 걸 느끼면서부터다. 그렇게 좋아했던 쌀과 냉면과 국수의 자리를 온갖 '초록'으로 채우게 됐다."

―그럼 밥이나 국수 대신 뭘 주식으로 먹나.

"하루 한 끼는 샐러드를 먹는다. 이것저것 많이도 먹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가볍게 먹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늘 뭐가 많았고, 양도 많았다. 그러다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좀 가볍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쪽에 있었다. 가족과 함께 살 때 늘 혼자 있고 싶고, 그래서 자주 어디론가 떠났던 마음과도 비슷하다."

―샐러드 만들기는 이제 고수(高手)가 됐을 것 같다. 맛있는 샐러드의 비결은 뭔가.

"첫째도 물기 제거, 둘째도 물기 제거, 셋째도 물기 제거다. 샐러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다. 핵심은 재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어떻게 보면 소설 쓰기와도 비슷하다. 채소를 물에 잘 씻은 다음 야채 탈수기에 넣고 돌려준다. 버튼을 누르는 자동형도 있고,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맷돌형도 있다. 나는 맷돌형을 선호한다. 손잡이를 돌리는 내내 '샐러드를 완성하고 있어'라는 경쾌한 기분이 든다. 야채 탈수기에 서너 번 돌린 야채를 바닥이 뚫린 바구니에 넣고 트램펄린에서 뛰던 걸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손목 스냅을 이용해 위아래로 흔들어 물기를 최대한 제거하면 거의 다 된 거다. 이제 토마토를 더하든 복숭아를 더하든 마음대로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걸 넣는다. 그리고 올리브오일, 식초, 소금을 약간씩만 넣어 버무린다."

―채소에 관해 쓴 글들을 모은 에세이집에서 서양식 육회 '타르타르'가 나와서 당황했다.

"잘게 다진 생 소고기와 민트·커민(향신료의 일종)의 조화가 기가 막혔고, 레몬즙의 산(酸)이 고기의 결을 조밀하게 바꿨음에 놀랐다. 고기 결 사이로 다진 케이퍼(지중해 식물 케이퍼의 꽃봉오리로 식초와 소금에 절여 음식으로 활용한다)와 샬럿(양파의 한 종류)도 새침하게 드러났다. 허브의 존재감이 가득한,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었다."

―채소 중에서 특히 허브를 좋아하나. 책에서 본인을 '허브 없이는 살 수 없는 허브인(人)'으로 규정하기도 했던데.

"장마철이나 태풍주의보가 내리면 신선한 허브를 사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장마전선과 태풍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다. 냉장고에는 오로지 허브만을 위한 수납공간도 마련했다. 민트, 딜, 방아잎 등 허브가 들어간 음식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안 먹으면 먹어도 먹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허브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허브를 취급하지 않는다'와 '감각적 요소를 무시한다'가 같은 말처럼 느껴진다."

―아보카도와 아스파라거스를 '자기 완결적 음식'으로 꼽았다.

"아보카도와 아스파라거스는 그 자체로 완결무결해서 가미를 하거나 조리를 과하게 하면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아스파라거스는 고독하게 충만하다. 본연의 맛만으로도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치거나 버터를 넣고 살짝 익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양파나 감자처럼 잘게 썰어 스튜처럼 한데 끓여내는 음식 재료로 어울리지 않는다. 아보카도는 어떤 양념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아보카도인 채로 그냥 먹는다. 반으로 가른 아보카도를 티스푼으로 파 먹으면서 완전무결한 초록을 느낀다."

―과메기 먹을 땐 쪽파를 자르지 않고 통으로 먹는다고 썼는데.

"포항 출신 소설가 K가 고향 단골집에서 공수해온 과메기를 먹는 자리였다. K는 과메기는 이렇게 먹는 거라며 생미역으로 싼 과메기를 쪽파로 칭칭 동여매더니 초장을 지나치지 않나 싶게 많이 찍어서 먹어보라고 했다. 그가 입에 넣어준 쪽파 과메기는 황홀했다. 쪽파 집약적인 그 맛! 이후로 과메기를 먹을 때면 쪽파를 자르지 않고 통으로 먹는다."

―초록주의자는 여름 보양식도 특별할 것 같다.

“하야시라이스(하이라이스)를 먹는다. 온갖 채소를 듬뿍 넣고 잔뜩 끓여뒀다가 기운이 없을 때마다 데워 먹으면 힘이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