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고서치 대법관

미 연방 대법원은 15일(현지 시각) 회사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뉴욕타임스(NYT)는 "성소수자(LGBT) 문제에 있어서 반세기 만에 예상치 못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이 예상을 뒤엎고 찬성 판결을 주도해 '깜짝 판결'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 대법원은 이날 성별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7조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에게도 적용되는지를 가리는 재판에서 이들이 민권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판결했다. 1964년 제정된 민권법 7조는 종업원을 성별과 인종, 출신 국가,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판결로 보호 대상이 성소수자들까지 확장된 셈이다.

이 판결을 이끌어낸 소송은 몇 사건이 합쳐져 대법원으로 올라간 것이다. 2013년 직장에서 6년 동안 남성으로 일하다 성전환을 한 뒤 여성으로 작업장에 복귀하려 했으나 해고된 에이미 오스트레일리아 스티븐스 사건, 뉴욕의 스카이다이빙 강사가 여성 고객에게 "내가 100% 게이이기 때문에 나와의 육체 접촉을 우려하지 말라"고 농담했다가 해고된 사건 등이다.

이번 판결엔 대법관 6명이 찬성 입장을 밝혔고, 3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현재 미국 대법원의 이념 구도는 보수 대법관 5명, 진보 4명이다. 이날 판결은 보수 성향 고서치 대법관과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다른 4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의 편에 서면서 가능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 성향이지만 오바마케어(전국민 의료보험) 보조금 지급에 찬성 의견을 내는 등 진보와 보수를 오가는 판결을 해왔다. 미국 언론들이 이 판결에서 주목한 건 판결의 주심(主審)을 맡은 고서치 대법관이다. 그는 판결문에서 "답은 분명하다. 고용주가 동성애자 또는 트랜스젠더임을 이유로 개인을 해고하는 것은 정확히 민권법 7조가 금지하는 것"이라며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란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고용주는 다른 (일반적인) 직원들에게는 묻지 않았을 질문으로 (차별해서) 해고한 것"이라고 했다.

1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연방 대법원 앞에서 한 남성이 성소수자(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6색 깃발을 펼치고 있다. 미 연방 대법원은 이날 성별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7조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에게도 적용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할 수 없다는 취지다.

고서치 대법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두 대법관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금지하는 등 미국 민주당을 비롯해 진보진영이 추진해온 성소수자 권리 확대 정책에 제동을 걸어왔다. 그 점에서 고서치의 이번 판결은 진영 논리를 넘어선 소신 판결이자 트럼프에 대한 '반란'으로도 여겨질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제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대법관 임명 기회가 왔을 때 자신들과 성향이 맞는 대법관을 임명해왔다. 고서치의 대법관 자리도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사실상 '생떼'를 써서 얻은 자리다. 고서치의 전임인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말기인 2016년 2월에 사망해 오바마 대통령이 후임을 지명하려 했지만,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인준 투표'를 무기로 대법관 자리를 계속 비워놓게 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그해 11월 대선에서 승리, 2017년 1월 취임하자마자 고서치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NYT는 이번 판결이 2015년 연방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보다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강력한 판결"이라며 "우리는 이 판결에 따라 살 것"이라고 했다.

☞LGBT

여성 동성애자(Lesbian), 남성 동성애자(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의 앞글자를 딴 약어로, 일반적으로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용어다. 1990년대 들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양성을 표현한 빨·주·노·초·파·보 6색 깃발이 LGBT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