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드디어 ‘의회 독재’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다. 되돌아 올 수 없는 길,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길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민주당은 어제 15일 저녁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단독으로 국회 상임위 18개 중 6개 상임위의 위원장 선출을 강행했다. 법사위, 기재위, 외통위, 국방위, 산자위, 보건복지위 같은 알짜 핵심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통합당은 관례적으로 제1야당이 맡아왔던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이 차지하자 이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본회의를 보이콧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5일 통합당이 빠진 상태에서 단독으로 국회를 개원해서 국회의장을 선출한 바 있다. 우리는 단독이라고 썼지만, 그것은 독단(獨斷)이었다.

통합당은 이런 반응을 내놓았다. "폭거이자 치욕이다." "남은 문재인 정부 2년을 황폐화하는 첫 출발이 될 것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18개 상임위를 다 내놓겠다." "오늘은 일당 독재가 시작된 날이다." 그러면서 여당의 단독 원 구성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원내대표 사의를 표명했다.

사실은 미국 같은 나라는 의회 선거에서 1당에 된 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전부 차지한다. Winner takes it all. 승자 독식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상하 양원제를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원을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서 야당은 상원을 지키고 있다가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양원제가 아니라 단원제이기 때문에 야당이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즉 미국의 상원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야당이 갖게 하는 관례를 세웠던 것이다. 이런 관례는 한 세대를 넘어서 지난 33년 동안 지켜져 왔다. 그러니까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례(前例)가 없었던 일이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다시 말해 ‘87 체제’ 이전, 권위주의 독재 시대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의회를 통과하는 모든 법률안은 반드시 법제사법위, 법사위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이곳에서는 통과를 앞둔 해당 법률안이 헌법이나 다른 법률과 충돌하는 내용이나 표현을 담고 있지는 않는지를 심사하는 자구(字句) 심사 기능은 갖고 있다. 야당은 이 기능을 명분 삼아서 여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는 법률안이 과연 국익이 도움이 되는지를 따지면서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에 걸려서 통과되지 못한 법률안이 55건이 있었다. 전체 법률안 수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그러나 국익이나 민생과 관련해서 이해가 충돌하고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을 때 야당이 견제 기능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도대체 왜, 왜 법사위원장을 한사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일까.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 말처럼 "민주당은 무엇이 두려워 법사위원장에 집착하고 끝까지 가져가려" 했을까. 사실 민주당은 180석 가까운 176석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선진화법과 패스트 트랙 시스템을 동원할 수 있다. 지난번 선거법 개정안, 그리고 공수처 설치 법안을 그렇게 강행 처리한 적도 있다. 그런데 왜 민주당은 기어코 법사위원장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일까.

민주당이 단독으로 6개 상임위원장을 뽑을 때 통합당 의원 전원은 본회의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무슨 죄를 지었길래 법사위를 강탈하나’. 통합당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이 검찰과 법원을 관할하는 법사위를 장악해 정권 핵심부가 관련된 ‘울산 선거 공작’ 사건 등 비리 의혹을 가리려는 것 아니겠느냐." 오늘 아침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이렇다. ‘법사위원장 가져간다고 울산 선거공작 진실 못 막는다’.

여당 의원들이 모든 비난을 감수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스크럼을 짜고 결사 옹위하듯 달려들 때는 오로지 하나의 경우뿐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과 관련돼 있을 경우다. ‘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이 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관련된 울산 선거공작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조선일보 사설)고 본 것이다. 울산 선거공작 사건은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여럿 재판에 넘겨져 있다. 더욱이 법사위가 야당 몫으로 결정될 경우, 울산 선거공작 사건의 최대 피해자였던, 전 울산시장 김기현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법사위를 사수(死守)하라!’, 이것은 겉으로는 표현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여당 의원들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마음에 품었음직한 ‘정권 특명(特命)’이요, ‘청와대 특명’이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다 내주어도 좋다, 그러나 법사위는 안 된다, 법사위를 빼앗기면 정권을 빼앗기는 것이나 같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압도적인 원내 1당을 차지하고도 아직도 위태롭고 불안한 정권이란 그런 것이다.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조국 일가 사건, 드루킹 대선 여론조작 사건 같은 정권 비리 의혹이 줄줄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정권은 검찰과 법원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기 말 정권을 방어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국회 관행과 민주 절차를 무시하는, 넘지 말아야 한 선을 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의회 독재’와 ‘정권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초입이라는 것을 깨달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