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찰스 핼퍼린 지음|권용철 옮김|글항아리|360쪽|2만원 13세기 칭기즈칸이 일으킨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하고 곳곳에 칸국(汗國)을 세웠다. 중국에는 원(元)이, 페르시아에는 일 칸국이, 러시아에는 킵차크 칸국이 들어섰다. 원과 일 칸국이 남긴 족적은 중국과 이란 역사에 자세히 새겨졌다. 킵차크 칸국은 그렇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피지배 역사를 남기려 하지 않거나, 남기더라도 피해만 부풀리는 방향으로 왜곡했다. 몽골제국사 전문가인 저자는 불편한 진실에 눈감는 ‘침묵의 이데올로기’가 역사 서술에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킵차크 칸국은 1240년부터 1480년까지 러시아를 지배했다. 피지배자들은 자신들이 전투에서 졌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왜 패배했고, 그 후 지배자들이 어떤 통치 행태를 보였으며, 러시아 사회가 받은 영향이 무엇인지는 기록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러시아 역사가와 문인이 남긴 몽골의 러시아 지배사는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그들은 당시를 '타타르의 멍에'(Tatar Yoke)라 명명했고, 이런 입장은 후대에 킵차크 칸국 지배하의 러시아를 연구하는 학자들 시선까지 고정해버렸다. 여기에 유목민을 깔보는 정주민 특유의 경멸적 시선까지 겹쳐졌다. 이로 인해 외세에 지배당했던 시기 러시아 연구는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그렇게 은닉된 역사를 복원해 낸다. 몽골인의 침입 이후 첫 100년은 러시아인들이 서술한 것과 유사하다. 몽골은 러시아를 철저히 파괴하고 착취하고 억압했다.

정복 초기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에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다. 그림은 말에 올라탄 킵차크 칸국 관리가 러시아인들에게 현물로 세금을 받는 모습.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결코 단색화일 수 없다. 한 세기를 넘어서면서 킵차크 칸국의 통치는 러시아 사가들이 전하는 것과 달라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몽골의 지배는 러시아 문화와 경제에 침체를 가져오지 않았다. 농경사회였던 러시아는 유목민 왕조의 중개무역 육성에 힘입어 상업적으로 도약했다. 동·서 교역로를 연결하는 선상에 있던 도시 모스크바는 몽골 지배의 최대 수혜자였다. 세금을 현물이 아닌 은으로 납부하는 마을이 등장했고, 러시아인과 몽골인의 결혼도 증가했다. 교역을 중개하며 돈을 버는 킵차크 칸국의 외교는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러시아 역사가들의 서술이 진실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침묵의 이데올로기가 숨긴 킵차크 칸국의 실체를 복원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러나 역사 전공자 아닌 일반 독자가 곱씹게 되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태도와 그로 인한 결과다. 침략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느라 바빴던 러시아 사가들은 불편한 진실을 숨기기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칭기즈칸이 여러 자식에게 남겨준 카리스마적 지도력과 노회한 정치력, 군사적 재능, 사람의 본성을 꿰뚫는 통찰에 무관심했다. 몽골 기마궁수들의 막강한 전투력 비결도 연구하지 않았다. 몽골을 지독히 혐오하면서도 러시아가 중국보다 100년이나 더 지배당한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러시아 사가들은 '국뽕'에도 마음을 빼앗겼다. 1380년 러시아 지도자 돈스코이가 몽골과의 전투에서 거둔 대승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 러시아인들은 이 승리를 즐겨 거론하며 "그 전투 때처럼 용맹하고 단결했다면 타타르의 멍에를 더 빨리 벗어던질 수 있었다"고 믿었다. 어림없는 소리다. 교역으로 쌓은 부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대와 효율적인 관료 조직을 자랑하던 킵차크 칸국과 초라했던 러시아의 당시 국력을 냉정히 비교하지 못한 데서 나온 허황된 꿈이었다.

킵차크 칸국이 해체된 뒤 러시아는 몽골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민족에 지배당하던 시절엔 없던 농노제가 시작되는 등 오히려 장기간 퇴보를 겪었다. 정복자를 욕하는 데 정신이 팔려 반성하고 도약할 기회를 저버렸기 때문 아닌가. 한 세기 전 나라를 빼앗긴 것이 분해 반일(反日)에만 열중하고 극일(克日)엔 소홀한 우리는 그 시절 러시아와 얼마나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