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강사 최진주씨 가족의 ‘가족 책상’. 최씨 가족은 거실 한가운데 큰 테이블로 출근, 등교해 각자 업무와 온라인 학습을 한다.

밥벌이의 전지(戰地)가 집으로 옮겨졌다. PC와 노트북, 책과 서류 가방이 책상, 식탁, 거실 테이블 심지어 침대로 탱크처럼 밀고 들어오고 있다. 아침이면 책상에 앉아 전원을 켜고 인터넷 창에 마우스 커서를 조준한다. 두두두두두두. 헤드셋을 착용하고 교신도 한다. "업무 중 이상 무. 응답하라, 오버!"

업무 망이 닫히는 시간이 다가오자 열 개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속력을 낸다. 업무 보고서를 투척하고 재빨리 업무 망 종료를 누른다. 미션 클리어 후 헤드셋을 벗어 던지고 침대로 칼퇴근.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재택근무, 재택 학습이 장기화하고 있다. 각자의 독립 공간, 책상을 사수하기 위해 집 안은 또 다른 전쟁터가 되어가는 중. 바이러스를 피해 책상으로 출근하고 침대로 퇴근하는 재택근무 시대, 생존 책상을 들여다봤다. 꾸미기보다 업무 효율을 우선한 코로나 사태 속 슬기로운 책상 생활.

셀프 홈오피스 꾸미기, 데스크테리어 유행

모 대기업 소속 디자이너인 도은선(31)씨는 요즘 회사로 출근하는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침실 옆방 '홈오피스'로 출근한다.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남편 한상현(34)씨도 미팅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홈오피스에서 일하는 날이 많다. 부부는 아침을 먹고 홈오피스로 '출근'해 각자의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졌다. 재택근무를 할 땐 하루 평균 60~70%의 시간을 홈오피스에서 보낸다. 홈오피스로 사용하는 방 안엔 사무실에서나 사용할 법한 컴퓨터 모니터의 각도 조절 장치 '모니터 암', 자세에 따라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과 '키보드 스탠드' 등 전문 사무용 가구와 사무용품 등이 차지하고 있다. 도씨는 "최대한 각자의 사무실 업무 환경을 비슷하게 구현하면서도 일의 능률과 건강을 우선 고려해 사무가구와 사무용품엔 과감히 투자했다"고 했다. 도씨는 "일할 맛 나는 '홈오피스템(홈오피스 아이템)'을 장착한 덕분인지 능률이 저절로 올라가더라"라고 했다.

인터넷 매체 기자 남빛하늘(26)씨는 지난 2월 자신의 집에 자체 '기자실'을 꾸몄다. 현장에 나가 취재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자신이 꾸민 기자실에 출근해 셀프 출근 체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카페 스타일의 원형 테이블을 놓고 스피커를 가까이 두었다.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스탠드형 조명으로 분위기도 살렸다. 남씨는 "코로나 사태로 회사도, 좋아하는 카페도 못 가는 상황이라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생각으로 카페 스타일로 꾸몄다"고 했다.

재택근무가 늘며 재택 근무자를 위한 홈오피스, 업무 효율과 집중력을 높여주는 데스크테리어(deskterior·책상 꾸미기) 관련 상품 매출도 부쩍 상승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던 지난 3~5월 지난해 동기 대비 독서실 책상은 69%, 게임용 의자는 206%, 칸막이는 845%, 원격 회의와 화상 학습 등에 필요한 PC 카메라·마이크 판매량은 각각 236%, 237% 증가했다. 집 꾸미기 서비스 앱 '오늘의집' 등 인테리어 정보 사이트엔 홈오피스 꾸미기, 데스크테리어 관련 '집 자랑' 게시물이 대폭 늘어났다. 류승완 오늘의집 제휴·광고 본부장은 "홈오피스, 재택근무 관련 인테리어와 제품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관련 콘텐츠와 매출도 늘었다"며 "카테고리별로 보면 코로나 사태 이전 1월 말 대비 책상, 의자, 책장 등 홈오피스 관련 가구 매출이 최근 평균 30%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퍼시스 그룹의 '데스커' 등 사무용 가구 전문 브랜드들은 재택근무에 따른 수요 증가로 쇼룸에 홈오피스를 따로 구성하거나 관련 기획전을 열고 있다.

지난 6월 9~10일 '아무튼, 주말'이 잡코리아와 공동으로 진행한 '재택근무, 유연근무제에 따른 홈오피스 꾸미기' 설문 결과 '코로나 사태 후 데스크테리어를 해본 경험'에 대해 '해봤다'고 한 직장인이 전체 응답자 227명 중 절반(56.4%) 이상을 차지했다. 데스크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역시 '높아졌다'가 55.1%인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쯤 등장한 데스크테리어라는 신조어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나 '생존'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①발마사지기부터 높이 조절 책상까지 맞춤형 홈오피스로 꾸민 도은선·한상현 부부의 작은 방. ②방치돼 있던 베란다를 작업실로 꾸민 캘리그래피 작가 정은화씨 집.

안방·베란다에 홈오피스

설문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 환경(홈오피스)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질문엔 64.8%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5.1%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전체의 90%에 가까운 응답자가 재택근무 환경이 필요하다고 답한 셈이다. '재택 생활이 늘면서 중요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묻는 항목엔 56.4%가 '서재 등 독립 공간'이라고 답했다. 거실(18.5%)과 침실(18.5%), 주방(4%)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데스크테리어에 앞서 독립 공간 확보가 우선이다. 동거 가족이 없거나 독립해 혼자 사는 경우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재택근무 자체가 가족들과의 전쟁일 수 있다.

인쇄물 디자이너 정다은(23)씨는 코로나 사태 후 재택근무 체제로 바뀌며 가족들과 합의해 안방을 차지했다. 조부모, 부모님과 함께 살며 대학생인 동생과 방을 같이 써야 하는 정씨로선 일을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비교적 넓은 안방엔 작업을 위한 책상과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원형 테이블, 침대 등을 배치했다. 정씨가 책상에서 일하면 동생은 거리를 둔 원형 테이블에서 공부하는 식이다. 정씨는 "책상을 두 개 나란히 놓아 답답한 사무 환경처럼 꾸미는 대신 책상과 원형 테이블 조합으로 그때그때 분위기를 바꾼다"고 했다. 동료들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없는 재택근무의 무료함은 이따금 동생과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간식을 먹으며 달랜다. 집중력이 떨어질 땐 책상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분위기를 바꾼다. 정씨는 "직접 써보니 카페 스타일 테이블들은 수납이 필요한 일을 하는 이들에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광고대행사 정글엠앤씨 이사 신재환(34·'챌린지노마드' 작가) 씨 역시 부모와 함께 사는 경기 고양 행신동 집의 자기 방을 서재 겸 홈오피스로 꾸몄다. 방에서 침대를 빼고 책상과 책장, 노트북과 PC만 두어 업무를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신씨는 "요즘 화상 회의를 자주 하다 보니 배경도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더라"며 웃었다.

집에 이렇다 할 자신만의 공간이 없다면 틈새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원조 재택근무자'들의 공간 활용법이 힌트다. 캘리그래피 작가 정은화(37)씨는 지난해 여름 아파트 베란다에 홈오피스를 마련했다. 책상, 의자, 서랍, 책장 등을 들이고 컴퓨터, 모니터, 프린터 등도 직접 설치했다. 베란다는 거실이나 방에 비해 조명의 밝기가 낮아서 조명도 교체했다. 조명 교체가 번거로우면 탁상용 조명을 활용하면 된다. 정씨는 바깥이 보이는 베란다 사무실에 앉아 캘리그래피 작업과 컴퓨터 편집, 강의 교재 등을 만든다.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작업실에서 홈 클래스도 계획하고 있고 작업 성격을 고려해 책상은 커다란 것을 택했다. 정씨는 자신만의 데스크테리어 노하우는 "업무에 필요한 물건 외에 두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근무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일하고, 비록 집의 부속 공간인 베란다지만 출퇴근하는 기분을 유지하고 있다. "단, 단열 공사를 하지 않은 베란다 홈오피스는 겨울엔 추울 수 있고,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시라"고 정씨가 말했다.

①집의 가장 큰 방을 작업실 겸 홈오피스로 활용하는 박민초·정호건씨 부부의 집. ②거실에 자체 ‘기자실’을 꾸민 인터넷 매체 기자 남빛하늘씨 집. ③책상, 식탁 등 다용도로 활용하는 직장인 서정수씨의 ‘만능 책상’. ④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파트 안방에 책상과 원형 테이블을 두어 홈오피스로 꾸민 정다은씨 자매.

재택근무로 홈오피스를 집의 중심에

다용도실이나 방과 욕실 사이 파우더룸 공간에 홈오피스를 꾸민 집들도 있다. 아예 이사나 집을 지을 때 무게중심을 홈오피스에 두기도 한다. 경기도 이천에 사는 건축가 부부 박민초(35)·정호건(37)씨는 2년 전 전원주택을 지으며 가장 큰 방을 작업실 겸 홈오피스로 꾸몄다. 아내 박씨는 "집을 짓기 전 서울의 빌라에 살 때도 가장 큰 방을 홈오피스로 썼다"고 설명했다. 3면에 창을 낸 부부의 홈오피스는 자연 속에서 일하는 기분을 내기에 충분하다. 하얀색 사무용 가구, 디자인 서적들로 채운 공간은 언뜻 인테리어 사무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홈오피스에 힘을 준 덕분에 코로나 사태 재택근무를 즐기고 있다. 서울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는 남편 정씨는 "팀원 간 협업이 필요한 일들은 사무실에서 하고, 회사 경영에 관련된 개인 업무는 집에서 하며 일을 분리해 하고 있다"고 했다.

책상도 변했다. 벽면에 바짝 붙은 네모 반듯한 모양의 단정한 책상에 혼자 앉아 '열일' '열공' 하는 풍경 대신 책상은 집이나 방 한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하고 방의 인테리어를 좌우하는 가구로 등극했다.

글로벌 스타트업 '에이콘3D' 이사인 서정수(29)씨 집 책상은 하얀색 타원형 테이블이다. 서씨는 이 테이블에서 일하고, 먹고, 쉰다.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에 앉아 '랜선 출근'을 한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주 2회 재택근무를 허용해오다 코로나 사태 후 원할 때 언제든 랜선 출근하도록 시스템이 바뀌었다. 서씨는 "불필요한 대인 관계, 잡음, 잡무가 없으니 집중이 잘되는 것 같다"고 했다. 책상엔 노트북 거치대와 노트북, 수첩이 전부다. 화면을 좀 크게 봐야 할 땐 HDMI 단자로 TV와 노트북을 연결해 TV를 와이드 모니터처럼 활용하고 있다.

코칭 강사 최진주(39)씨 집 거실의 6~8인용 대형 테이블은 코로나 사태 후 가족 책상이 됐다. 아침이면 각자 앉아 출석 체크 후 최씨는 코칭 강의 자료 정리 등을,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정원(9)이는 헤드셋을 끼고 온라인 학습을 한다. 그룹 코칭은 대면 대신 캠을 통한 화상 방식으로 바뀌어 비교적 조용한 서재 책상에서 한다. "각자 책상에서 해보니 집중 시간이 제각각이라 아이들이 수시로 엄마를 호출하더라"는 최씨는 "코로나 사태를 예견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일하거나 공부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을 구입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했다. 현대 리바트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후 6~8인용 대형 식탁과 테이블 판매율이 특히 눈에 띄게 늘었다. 현대 리바트 관계자는 "재택근무와 온라인 학습을 함께하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식탁이나 테이블 구매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고 설명했다.

유행 스타일보다 업무 성격에 맞게 꾸며야

책상은 업무 성격에 따라 꾸미는 게 정답이다. 업무에 필요한 노트북, PC 등 '장비'들을 설치한 다음 산만하게 보이는 전선, 콘센트부터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우선이다. IT 기기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직업군은 멀티탭이 빌트인 방식으로 매입된 책상이 편리하다. 공간 분리가 필요하다면 가림막을 활용한다. 책상을 코너에 두고 키 큰 책장으로 한 면을 막아 '요새'처럼 꾸미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원조 재택근무자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책상과 의자는 되도록 직접 매장에 방문해 체험해보고 고르라"고 조언한다. 유행 스타일만 따라 했다간 업무 효율,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자세가 안 좋아져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집으로 출근하는 '코로나 시대', 집의 무게중심은 책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