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크게, 더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성숙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민주주의, 더 큰 민주주의, 더 다양한 민주주의를 향해 가야 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민주주의 성숙'을 말하기 5일 전 민주당은 21대 국회를 무려 53년 만에 일방 개원해 국회의장을 선출했다. 국회 시계가 3공화국이던 1967년으로 되돌아갔다. 야당이 관례적으로 맡아온 법사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내놓으라고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민주당은 이제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고 한다. 이해찬 대표는 어제 "최악은 아무런 결정도 못 하고 시간을 지연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대 여당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53년 전 권위주의 시절 여당 대표가 하던 말 그대로다.

민주당은 공수처법을 두고 당과 다른 목소리를 낸 금태섭 전 의원을 징계했다.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내부의 작은 이견 하나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민주주의 성숙'을 말한다. 국민적 공분 대상인 '윤미향 의혹'에 대해서도 당 대표가 함구령을 내리자 여당 거의 모든 의원이 입을 닫았다. 이것이 민주당식 민주주의다.

문 대통령 말처럼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작년 말 선거의 규칙인 선거법을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일방 처리했다. 과거 독재 시절에도 없었고 제대로 민주주의를 한다는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은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든 괴물 선거법이 만들어져 비례 정당이 등장하고 공천은 난장판이 됐다. 나라와 선거가 희화화됐다. 국회 방호원을 동원해 선거 규칙을 멋대로 바꾸는 정권이 '민주주의 성숙'을 말한다.

청와대는 야당 후보 관련 첩보를 경찰에 내려 보내고 경찰은 야당 후보가 공천장을 받은 당일 그의 사무실을 덮쳤다. 청와대 실세들은 여당 내 경쟁자에게 공직을 제안하며 후보 매수를 시도하고, 청와대 행정관들은 여당 후보의 공약을 만들어줬다. 모두 대통령 '30년 지기'를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 공작이었다. 검찰이 수사하자 검찰 수사팀을 해체해 버렸다. 그 책임자가 '민주주의 성숙'을 말한다.

신문에 의견을 쓴 필자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윽박지르고 대통령을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표현한 외신 기자를 매국노로 몰아붙였다.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사람을 재판에 넘기고, 수사를 빌미로 학생들 집에 무단 침입하고 개인 정보를 빼냈다. 이 모두가 '민주화 운동' 경력을 내세워온 정권 아래에서 최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6·10 민주항쟁은 이런 정부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다.